“한명숙, 정세균 장관에게 곽영욱 잘 부탁한다 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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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왼쪽) 전 국무총리가 곽영욱(오른쪽)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2일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1층 식당에서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과 곽 전 사장 등과 식사를 한 뒤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뉴시스]

한명숙 전 총리를 뇌물 수수 혐의로 22일 불구속 기소한 검찰은 공소장에서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구직 활동’ 전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구체적 정황을 제시했다.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5만 달러에 ‘대가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총리 출신 인사가 수뢰 혐의로 기소된 것은 한 전 총리가 처음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곽 전 사장은 1998년 대한통운이 한 전 총리가 운영하는 여성단체의 행사 경비를 지원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수시로 사적으로 만나 식사를 하면서 친분을 이어갔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자녀 결혼식에도 한 전 총리가 참석했을 정도”라고 했다. 공소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기도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연으로 곽 전 사장은 2006년 5월 대한통운에서 퇴직한 뒤 한 전 총리에게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곽 전 사장은 2006년 11월 말 한 전 총리 측으로부터 ‘총리공관 오찬에 산자부 장관 등을 함께 초대하니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가 산자부 장관에게 자신에 대해 얘기해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는 게 곽 전 사장의 얘기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에서 곽 전 사장과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등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정세균 장관에게 곽 전 사장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검찰은 제시했다. 이후 곽 전 사장은 석탄공사 사장 후보 1순위로 추천됐지만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는 한 전 총리로부터 “이번에는 임명되지 않았지만 곧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2007년 3월 31일 결국 남동발전 사장으로 선임됐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측은 “증거도 증인도 없고 진술의 일관성도 신빙성도 없는 상황에서 짜맞추기 주장만을 바탕으로 공소장이 작성됐다. 한국 검찰사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사장 지원을 결심하는 과정에 정세균 대표 측이 연관돼 있다는 검찰 조사 결과는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곽 전 사장은 2007년 11월 말 이원걸 당시 산자부 2차관 등으로부터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또 석탄공사 사장직 도전에 실패한 뒤 2007년 3월 초 한국전력 임원으로부터 사장 지원서를 내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전력 자회사인 남동발전 사장에 지원했다. 한국전력은 산자부 산하 공기업이다.

검찰은 이처럼 산자부 공무원과 산하 공기업 임원이 조직적으로 곽 전 사장을 챙긴 배경에 정세균 당시 장관이 있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로선 정 대표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정 대표가 완전히 클리어(clear)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소설 같은 이야기다.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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