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끝내야 할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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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났다.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한반도에 화해.협력의 기운이 확연하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에서 '주적' 개념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있듯이, 남북간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중층적이고 보다 심도있는 제도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전쟁상태이며, 어떤 형태로건 군사적 긴장이 존재하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공동선언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주한미군 문제 등 미국과 관련되는 부분이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이슈는 결국 미국과 별도로 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에 의한 대체, 군작전권 회복, 군축 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다뤄져야만 한반도에 자주성이 회복되고 한국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이를 끝내기 위해서는 아직도 다차원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 부는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더불어 생각해봐야 할 것은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라고 하겠다.

한국전쟁 당시 미 대통령 트루먼은 "3차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고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그 자체가 3차세계대전이었다. 세계대전은 전쟁이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서가 아니라 세계 중심 국가들이 권력관계나 경제적 모순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충돌해버리는 경우를 뜻한다.

한국전쟁의 경우 미국.소련.중공.영국.일본 등 중심국들이 대거 개입된 전쟁이었기에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만약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이나 독일이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부흥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 헤게모니체제는 구축될 수 있었겠는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미국은 1940년대 말까지도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 직전인 49년에는 미국 자신이 심각한 경기후퇴를 겪고 있었다.

유럽의 주요 자본주의국가들 역시 경제적 위기와 정치.사회적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중국이나 소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전을 겪은 독일과 일본을 위시해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자본가계급과 국가가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체제 전반의 작동이 위태로웠다.

미국은 이같은 체제적 위기를 돌파할 중심 역할을 하려 했으나 정치적 반대파의 제동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전쟁은 미국내 정치투쟁, 미국 경기후퇴, 유럽과 일본의 피폐, 자본가계급 및 국가의 정당성 위기와 그에 부수된 좌파의 준동,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물결 등 40년대 말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위협적인 제반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전쟁 붐으로 횡재를 한 일본과 유럽은 경제적 부흥에 성공했다. 미국은 재무장 프로그램을 펼쳐 경기후퇴를 극복했다. 자연히 세계시장에 활력이 돌아왔다.

한국전쟁은 미국으로 하여금 생산과 교역이 번성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헤게모니에 의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했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해 40년대 말 위기를 해소하고 50년대 그 황금기를 맞게 됐다.

공산진영에 맞선 자유진영의 구축도 명확해졌다.

이렇듯 한국전쟁은 당시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했다. 미국이 전세계적 패권을 확립하는 데도 결정적 효과를 발휘했다. 한반도의 희생 위에 세계가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아이러니는 한국전쟁의 이같은 세계사적 의미 때문에 한반도 통일.평화 문제에서 정작 당사자들이 본질적으로 배제돼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50주년 즈음에 채택된 공동선언의 자주적 통일 문제 해결은 한반도인들의 노력이 일차적이지만, 주변 강대국들이 50년 전 한반도의 비극 위에 재기한 자신들의 과거를 상기하고 남북협력사업에 적극 동참하는 노력을 보이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주훈 <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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