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옥에 티’도 모으니 배꼽잡는 콘텐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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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출쌍’이라고 적힌 한글 문구가 화면에 비쳤다(사진 위). MBC 드라마 ‘탐나는도다’에선 17세기 탐라(제주도)에 현대 문물인 등대가 보여 옥에 티란 지적이 나왔다(아래). [MBC 화면 캡쳐]

예술의 세계에 ‘실수’가 발을 디딜 틈은 없다. 작은 흠만 있어도 그 작품은 폐기돼 마땅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중예술의 한 갈래인 방송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요즘 방송에선 실수도 즐길 만한 문화 콘텐트로 둔갑한다. 방송가에선 이런 현상을 ‘에러 콘텐트(error content)’라 부르기도 한다. 버려 마땅한 실수 장면이 문화적으로 재소비된다는 뜻이다.

에러 콘텐트는 크게 (흔히 NG 장면으로 지칭되는) 출연자의 실수와 (흔히 ‘옥에 티’라고 불리는) 제작상의 실수로 나눌 수 있다. 방송에선 주로 명절 등 각종 특집 프로그램에서 에러 콘텐트를 활용한 내용을 다룬다. 추석이나 설날에 TV 채널을 넉넉히 메우는 ‘스타 NG 열전’ 등과 같은 방송이다. 공개되지 않았던 드라마 속 출연자들의 대사 실수나 어정쩡한 표정 등이 시청자들의 웃음샘을 자극한다.

아예 에러 콘텐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정규 프로그램도 있다. 2005년부터 방송 중인 MBC ‘해피타임(일요일 오전 8시10분)’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주간 방송에서 출연자 NG와 옥에 티 장면을 찾아내 퀴즈 형식으로 진행하는 코너가 있다. 제작진은 매주 대략 12~13분짜리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200개 정도의 원본 테이프(약 6000분 분량)를 검토한다고 한다. 연출 신명훈 PD는 “미 공개된 화면을 통해 절제되고 정돈된 방송의 생생한 뒷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러 콘텐트의 또 다른 특징은 콘텐트의 소비자와 생산자간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해피타임’의 경우 최근 대다수 옥에 티 장면이 시청자 제보를 통해 구성된다. 제작진이 일일이 NG와 옥에 티 장면을 걸러내던 과거와 달리, 직접 화면 캡쳐를 해가며 제보를 해오는 시청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옥에 티’ 게시판엔 현재 6000여 건의 시청자 제보가 올라있다. 수백 건의 제보 글을 올린 ‘파워 옴부즈맨’도 수두룩하다.

지난해부터 200여 건의 제보를 한 백남현(33)씨는 “내가 찾아낸 장면이 실제 방송에 나가는 게 신기해 옥에 티 찾기를 시작했는데 아예 취미생활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백씨는 퇴근 후 매일 드라마를 녹화하고, 인터넷 다시 보기로 두세 차례 돌려보며 문제 장면을 찾아낸다고 한다. 네티즌들 사이엔 ‘옥에 티 찾기 놀이’도 인기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옥에 티를 제보하는 별도 게시판을 운영 중이다. 현재 1만4000여 건의 제보가 올라있다.

‘시청자 수사대’가 눈 여겨 보는 에러 콘텐트엔 어떤 게 있을까. 가장 흔한 유형은 소품 사용의 실수다. 13일 방영된 SBS 드라마 ‘천만번 사랑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날 방송에서 주인공 이선영(고은미)은 같은 시간대에 펼쳐진 세 장면에서 살구·검정색 등 각각 다른 종류의 스타킹을 신고 나왔다. 이 장면은‘요술스타킹’이란 제목으로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장면도 있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MBC ‘선덕여왕’에선 최근 ‘어출쌍’이라고 적힌 한글 서찰이 화면에 비쳐 “신라시대에 어떻게 한글이 나오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자막 사용이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선 잘못된 표기가 엉뚱한 웃음을 유발한다. 최근 방영된 KBS2 ‘1박2일’에선 강원도 영월의 명소인 ‘청령포’를 ‘청룡포’로 잘못 표기해 사과문을 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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