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분쟁' 숨은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의 중국산 마늘 긴급관세 부과에 맞서 취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보편적인 통상원칙을 어긴 전례없는 과도한 조치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규정에 의한 통상문제 해결 절차를 완전 무시한 것으로 WTO가입을 앞둔 중국 정부의 '한국 길들이기' 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이달 말부터 시작될 협상에서 갈등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중국의 강경대응 배경〓한.중간의 '마늘전쟁' 은 마늘 자체보다는 한국의 중국시장 무역흑자가 지난해에만 48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양국간의 무역역조가 뚜렷해지면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중국의 강경조치에는 중국내 마늘 주생산지인 산둥(山東)성 출신 인사들의 정치적인 이해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산둥성은 최근 3만t 규모의 마늘 냉동저장시설을 만드는 등 한국시장을 겨냥한 수출확대를 추진해왔지만, 한국의 긴급관세 부과로 수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농민들의 민원이 그치지 않고 있다.

대외무역경제협력부 등 중국 주요 정책 결정 부처에 산둥성 출신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이번 조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마늘 수출 차질로 최근 농민 6명이 자살하는 등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할 정도" 라면서 "수출물량을 계속 유지해 줄 것" 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측이 사전협의 과정에서 마늘 대신 수입 참깨.옥수수 수입물량을 확대해주는 보상방안을 제시했지만 중국은 '마늘은 마늘로 풀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중국 조치 무엇이 문제인가=중국의 보복조치는 당사자간 협의를 우선 거친 뒤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WTO 세이프 가드 협정은 물론, 보복하더라도 동종업종부터 실시하고 고관세를 부과하는 1차 조치를 거친 뒤에야 수입금지에 나설 수 있다는 분쟁해결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우리와 통상마찰이 잦은 미국만 하더라도 슈퍼301조 등 보복조치는 1년간 양자협의를 거친 뒤에야 취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준사법기관이 중국측이 참여한 공청회를 거쳐가면서까지 내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복에 나선 것은 조세주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역위원회의 한 위원은 "8명의 위원 중 교수.언론인 등 민간분야에서 6명이 참여한 가운데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듭한 끝에 중국산 마늘이 국내산업에 피해가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것" 이라면서 "중국이 이런 식으로 보복한다면 국가간의 분쟁해결 절차는 의미가 없다" 고 말했다.

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