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상보기] 선사시대 암각화를 보는 노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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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6월 13일 오전 나는 대학원 학생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 강독을 하고 있었다.

아니,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아직 책 껍데기도 열지 않은 채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눈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대통령이 북으로 간 날이다.

나는 텍스트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눈에 포기하듯이 말했다.

"그래, 지금 아리스토텔레스가 문제냐? 가자. 보자. "

AV 시스템이 돼 있는 내 연구실에 빼꼼히 앉아서 우리는 텔레비전 속의 평양으로 갔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차량에서 찍은 필름의 속도감 때문에 우리도 앉아서 평양에 들어가는 것 같은 승차감을 느꼈다.

문익환 목사가 갔고, 소설가 황석영이 갔고, 여학생 임수경이 갔다 온 그 불법의 길을 이제 온 국민이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차량 행렬 어디엔가 대통령과 국방위원장이 한 차에 합승했다고 한다.

시내가 가까워지자 연도에 환영 나온 시민들이 나타났는데, 핑크빛 붉은 종이꽃들을 들고 함성과 연호를 외쳐대는 그 모습은 동원된 환대의 수준을 넘어 보였다.

그것은 남쪽 TV가 선별적으로 보여준 평양의 장면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내장된, 전체주의적 열광의 퍼포먼스에 대한 거부감이나 섬뜩함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순정이나 자발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시내의 어느 기념탑 언덕배기에 다소 무질서하게 서서 평양의 남녀노소가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1919년 3월 1일 아침 우리의 슬픈 역사에 목소리로 독립을 요청했던 바로 그날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TV는 순안공항에서 두 정상이 첫 대면을 하는 장면을 연거푸 보여 주었다.

외신이 '역사적 악수' 라고 타전한, 두 정상이 환한 웃음으로 두 손을 맞잡는 장면. 화면에 강렬한 원근법적 깊이를 부여하는 붉은 카펫 길로 두 사람이 박수치면서 걸어오는 장면. 사열대 앞에서 의장대가 분열하는 장면 등등.

그것들을 보면서 어떤 학생은 "꼭 달나라에 착륙하는 그 장면 같아요" 라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학생들은 어떤 장면에서 킥킥 웃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시큰둥해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체로, 내가 대학을 다니던 해 어느 날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갔다 와서 7.4 남북공동선언문이라는 충격적인 문서를 발표했던 7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이들은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어찌 되었건, 지난 고단한 우리 역사로부터 면세받은 풍요의 수혜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뿐만 아니라 분단의 대가로 자기 삶의 한 모퉁이가 덜컹 떨어져 나간 남녘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평양은 달의 뒤편처럼 멀고 낯선, 가려진 지명이었다.

거기에 대통령이 갔다.

자,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학생들과 토론했다.

통일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올 수 있다는 데 다들 공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우리 내부에 준비가 거의 없지 않은가, 55년이라는 시간의 경화 속에서 굳어져 버린 남북 사이의 여러 차이에 대한 관용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훈련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던진 화두였다.

TV는 이제 온갖 꽃이 피는 정원인 백화원 영빈관에 막 도착한 두 정상과 그들의 수행자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극작가 박조열 선생이 생각나 그 분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선생님, 접니다. 지금 보고 계시죠?" 나는 당연히 그 분도 지금 TV 앞에서 일초 일초가 째깍째깍 역사의 초침으로 들어가고 있는 순간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계시려니 예상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핸드폰 음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그분의 위치를 궁금하게 했다.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나, 울산이요. 지금 암각화 보고 있어요. " 이어진 음감만으로는 이런 문장이 되는 대답이 잉잉거리면서 들려왔다.

"네? 울산 선사시대 암각화 말입니까?"

암울한 80년대에 '장군의 발톱' 을 발표해 우리를 서늘하게 했던 박조열 선생은 아직 함흥에 일흔 넘은 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실향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정의하는 가운데 그것은 처음과 중간 끝이라는 일정한 길이를 갖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낸 이 비극의 길이는 너무 길다.

황지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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