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터널서 고장난 기차 ‘4시간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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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스타의 영국 쪽 종착역인 런던의 세인트 팬크래스역에서 19일(현지시간) 승객들이 열차 운행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몰려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고속열차가 영·불 해저터널에서 멈춰서 승객 2000여 명이 공포와 추위에 떠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1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유로스타 5편이 해저터널 안에서 갑자기 운행이 중단됐다. 유로스타 측은 승객들이 탄 열차를 터널 밖으로 견인하거나 가운데의 보조 터널로 기차를 보내 승객들을 이동시켰다. 일부 승객은 승용차 탑승자 전용 열차인 ‘유로터널 셔틀’로 옮겨져 프랑스로 보내졌다. 5편의 열차 중 2편은 프랑스 쪽으로 견인됐다. 이 터널에서 열차를 견인한 것은 개통 15년 만에 처음이다.

고장 난 기차 가운데 2편은 난방 설비와 조명도 꺼졌다. 일부 승객은 바닷속에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울거나 소리를 질렀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서너 시간 동안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일부는 출발 14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터널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열차가 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런던에 도착한 승객들은 “승객 대피가 재빨리 이뤄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며 화를 냈다. 다치거나 크게 건강을 해친 승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스타 파리∼런던 구간은 보통 2시간15분이 걸린다. 이 사고로 19~20일에도 유로스타 운행이 완전히 중단됐다. 유로스타는 요금을 모두 되돌려주고 보상 차원에서 1인당 150파운드(28만5000원)와 왕복 유로스타 승차권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유로스타는 지난해 9월 해저터널에서 불이 나 며칠 동안 운행이 중단되는 등 그동안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유로스타 측은 “한파로 프랑스 북부 지방 기온이 크게 떨어져 차가워진 기차가 갑자기 따뜻한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서 고장이 난 것 같다”고만 밝혔을 뿐 정확한 사고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날 프랑스 북부 지역에 눈이 내렸다. 유로스타는 올해 2월 영국 지상 구간에 눈이 많이 와 운행이 중단되는 등 폭설에 대한 취약점을 드러냈다.

유로스타는 하루 평균 약 3만 명을 수송한다. 영·불 해저터널은 1882년 공사가 시작됐으나 영국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반대해 중단됐다. 84년 건설이 재개돼 94년에 완공됐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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