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만 있고 물증은 없는 뇌물사건, 돈 준 사람 진술 일관·구체성에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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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있을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의 쟁점은 ‘5만 달러 수수’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적인 물증이 없을 경우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이다. 현재 검찰이 확보한 주요 증거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 모 경제지 대표 등 참고인들의 진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달러로 환전한 시기와 내역 등도 파악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게서 돈을 받았음을 입증할 자금 추적 자료 등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경우에는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대법원 판례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피고인이 뇌물 받은 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이를 뒷받침할 물증이 없는 경우에 뇌물을 건넨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그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또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일관성 등과 함께 뇌물 공여자의 인간됨과 그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까지 들여다보도록 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전 농협 회장과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에게 줄줄이 유죄를 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전달해 물증이 없는 상태였지만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일관성 있고 구체적이어서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뇌물 혐의로 기소됐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박지원 민주당(전 문화관광부 장관) 의원 등은 “뇌물을 줬다는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도 곽 전 사장 등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이 가장 큰 관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검찰이 법정에서 ‘비장의 카드’를 제시할 경우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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