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대기업 임원으로 산다는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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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임원이 된 SK 계열사 임원들이 4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신규 임원 교육을 받고 있다. 초청 강사의 강연을 듣고 박수 치는 모습. [SK 제공]

최근 임원 인사를 마친 삼성·SK·LG그룹 등 주요 대기업 총무담당자들은 준대형급 이상 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그룹별로 수백 명의 신규 임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이 연초에 하던 인사를 올해는 연말로 앞당긴 데다 예년과 달리 계열사 인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한 영향이 크다. 더구나 이달 말까지 10년 이상 된 차를 교체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노후차 교체 세금감면 수요까지 겹쳐 ‘준대형급 차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임원인사가 나면 수일 내 전용차를 제공했지만 올해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차량 지급이 너무 늦어지면 렌터카로 지급한 뒤 나중에 바꿔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임원 인사에 따른 화환 품귀 현상까지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에 승진한 한 임원의 사무실은 화환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며 “거래처에서 화환 배달이 늦어지고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임원이 뭐기에 준대형차와 화환의 품귀 현상까지 벌어지는 걸까.

기업체 임원은 군대로 치면 별이라 해서 ‘샐러리맨의 별’로 불린다. 한마디로 부장과 임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대우가 확 달라지고 책임도 커진다는 얘기다. 임원은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이라고 한다. 임원은 평소 CEO감으로 대접받는 셈이다. 그래서 임원은 전체 직원의 1%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삼성의 올해 승진 임원 수는 380명.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상무 이상 임원은 1700여 명으로 국내 직원(17만3000명)의 약 1%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상장사 704개의 임원은 대표이사 등을 포함해 한 개 업체당 평균 19명에 불과하다.

주요 그룹의 경우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하면 늘어나는 혜택이 100여 가지에 달한다. 회사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자동차뿐만 아니라 골프장 회원권, 치과 치료비까지 지원해 준다. 사무실 공간은 부장 때보다 보통 두 배가량 늘어난다. 연봉이 1억원 안팎에서 1억5000만~2억원으로 훌쩍 뛰는 곳도 있다.

임원은 평사원과 달리 퇴직 이후에도 일정 기간 대우를 보장받는다. 삼성의 경우 1∼6년 상담역, 비상근 자문역 등의 자리를 보전해 준다. 현대·기아차는 필요에 따라 전무 이상의 고위 임원을 1~2년간 상임고문이나 자문역으로 위촉한다.

LG는 사장급 이상의 임원이 퇴직하면 고문으로 활동한다. 임기는 1~2년이다. SK도 1~3년간 퇴직 임원을 고문으로 위촉한다. 상무급은 1년, 전무급은 2년, 부사장 이상은 3년 정도다. 이들은 맡았던 직책과 업무에 따라 사무실과 비서, 차량 등이 제공된다. 하지만 임원은 ‘임시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고의 불안에 떤다. 임원이 되면 퇴직 형태로 퇴직금을 받은 뒤 재계약하는 절차를 밟으며 언제든 해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창규·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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