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끝나지 않은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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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흥분과 감격, 충격과 긴장 가운데 분단 사상 최초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이 끝났다.

남북 정상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비롯한 5개항의 합의를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파티가 끝나면 누군가는 계산서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무엇을 남겼고 공동선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번 정상회담의 진행과정이나 합의내용은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공동선언문의 내용은 더욱 예상 밖이었다. 물론 이산가족 문제나 경협 등 우리측의 관심사항이 공동선언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핵심 화두는 통일이었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천명했을 뿐 아니라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우선시해왔고 특히 金대통령은 남북간 화해협력과 평화정착을 중시해 왔던 점에 비추어 남북한 통일협상의 개시를 시사하는 공동선언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평양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측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은 남측의 주도에 의해 성사된 것으로 해석해 왔다.

또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당면한 경제난 때문이라고 보았고 정상회담의 주요의제는 따라서 남북경협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는 비교적 소극적.수세적일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러나 지난 3일간 북한이 보여준 태도는 소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金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해 준 金대통령의 용단에 감사를 표했고 우리 대통령 일행에 대한 평양시민의 환대는 열광적이었다.

이를 통해 평양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주도한 것은 자신들이며, 북한은 이번 회담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그리고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을 중시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이유는 6.15 선언에서 드러났다.

평양은 이번 정상회담의 본질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통일문제를 정상회담의 핵심주제로 부각한 것은 대내선전이나 명분축적의 이유도 있겠지만 명분용만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실제 북한은 통일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협상을 시도해 올 것이다.

최근 金위원장의 방중도 대만과 통일협상을 최우선 순위로 서두르는 중국과 입장조율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중반 이후의 북한의 활발한 외교행보도 남북간 통일협상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합의사항의 실천을 위한 당국간 대화를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번 공동선언은 金위원장이 직접 서명했고 북측의 최고 통치자가 앞장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만큼 북한체제의 특성상 후속조치가 신속히 이어질 것이다.

경제를 포함한 제반 분야의 당국간 회담이 개최되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통일문제에 관한 회담이 될 것이며 우리정부는 통일협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해왔으며 연방제 통일에는 여러가지 선결조건을 붙여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수정했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상회담에 이어 우리사회에 통일열기가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이 분단을 종결하고 통일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통일이 이상과 열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은 어떤 단계를 거쳐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이 문제의 핵심임을 유념해야 한다.

백진현 <서울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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