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6·15공동선언'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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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공식행사는 갈수록 양측의 친밀감이 느껴져 15일 고별만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합창했고, 공항의 작별에선 두 정상의 포옹도 있었다.

◇ '낮은 단계의 연방제' 〓공동선언 중 제2항의 '연합제' '연방제' 조항에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이라고 표현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상당시간 설득한 결과라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북측의 공식적인 연방제 안(案)은 중앙정부에서 외교.군사에 관한 권한을 갖는 것으로, 金위원장은 단독회담에서 이를 계속 주장. 그러나 金대통령이 "그 방안은 국제기구에서의 관계 등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 이라고 장시간 설명해 지방정부가 외교.군사 권한을 갖도록 하는 의미의 '낮은 단계의…' 라는 표현을 쓴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

金대통령은 회담 후 "내가 젖먹던 힘까지 내서 진실되게 설명했다" 고 회담분위기를 설명했다고 朴대변인이 전했다.

이와 관련, 朴대변인은 "회담시간이 3시간50분이었지만 3시간40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며 "특히 통일방안에 대해 두 정상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고 부연.

이 과정에서 金대통령은 金위원장에 대해 "세계 역사와 조류를 많이 알고 있었으며, 문제에 대해 납득이 되면 금방 수용하는 등 뭔가를 이루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해 이번 합의를 이끌어 냈다" 고 평가했다.

◇ 공동선언 문안확정〓공동선언 문안확정을 앞둔 막바지 단계에서도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 특히 공동선언에 서명하는 사람을 누구로 할 것이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것. 북측에선 국방위원장의 직책이 형식적으론 국가원수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과 함께 서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명하거나, 두 정상의 명을 받은 다른 두사람이 서명하는 대안들을 제시했다는 것. 그러나 남측에서 "우리는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을 남북의 지도자로 생각한다" 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이 서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급박했던 공동선언 작성〓공동선언 작성과정에서 두 정상은 큰 틀의 합의만 했고 문안은 오후 8시50분쯤부터 실무진에 의해 작성되기 시작. 양측 실무진은 두 정상이 목란관에서 만찬을 하는 도중 공동성명 초안을 마련해 만찬장으로 들고 들어갔고,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金위원장에게 먼저 보고. 金위원장은 초안을 검토한 뒤 일부 내용의 수정을 지시하며 이를 남측의 임동원 특보에게도 설명했다.

다시 林특보가 金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등 막후 조율작업이 부산하게 이뤄졌고, 다시 장소를 백화원 영빈관으로 옮겨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10분 전인 오후 11시10분에서야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김용순 위원장이 金대통령 등 남측 인사들과 金위원장의 방을 번갈아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담당. 최종 합의 뒤 실무진이 이를 두 정상에게 보고했고 두 정상은 정각 2분 전 서명식장에 입석, 밤 11시30분 서명했다.

◇ 두 정상의 허심탄회한 대화〓정상회담에서 金위원장은 처음에는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펴다가도 남측의 설명이 합리적이고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즉시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 상당한 합의가 가능했다고 朴대변인이 말했다.

金위원장은 회담에서 金대통령의 발언 중간 중간에 "나도 섭섭한 게 있는데 말씀을 하겠다" 면서 그동안 남측에 대해 불유쾌하게 생각했던 사항들을 기탄없이 솔직하게 말했다는 것. 金위원장은 "우리는 일관되게 하는데 남측에서 모순되게 한다.

이래서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고 불만을 토로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위원장은 또 남측 신문을 金대통령과 함께 보는 자리에서 자신을 좋지 않게 다룬 기사를 보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는 것. 반면 金위원장은 金대통령의 인생.정치역정에 대해 여러차례 존경심을 표시했다고 朴대변인은 전했다.

金위원장은 "여러번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는 탄압을 받고도 집권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논평했다는 것. 金대통령도 나름대로 북한에 대해 서운한 점을 金위원장에게 밝혔다.

朴대변인은 金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서운하다고 했는지 적시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잠수정 침투사건이나 서해교전에 대해 우회적으로 항의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대두됐다.

朴대변인은 "이런 金대통령의 문제제기, 金위원장과의 논의 등을 통해 공동선언문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고 말했다.

◇ 金대통령의 비전제시〓金대통령은 金위원장에게 "서로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 남북이 모두 잘 살아야 한다.

민족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며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통일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나라도 있지만 남북이 전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데는 다 동의한다" 고 설명했다는 것.

金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비전을 여러가지 제시했는데 "장기적으로 통일이 돼야 하고 그 전에는 공동번영해야 한다" 며 "이를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경협 등 교류를 통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 고 거듭 설득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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