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목메인 해외 동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분단 55년 만에 역사적인 첫 만남을 이루는 장면을 TV나 인터넷 화면으로 지켜본 해외 동포들은 한동안 감격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들은 이번 만남이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향한 큰 걸음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흥분의 순간을 보냈다.

"이거 이제는 머이가(뭔가가) 되겠구먼. "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함북 청진 출신의 장필홍(84)씨는 TV 중계로 남북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다 목이 멘 소리로 외쳤다.

부인 장귀여(86)씨는 "월남하면서 생이별한 동생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며 눈시울을 적시다 "살아 생전 고향땅을 한번이라도 밟아보고 싶다" 며 끝내 통곡했다.

1947년 월남했던 재미 한승직(79)목사는 TV에 평양거리의 환영인파가 등장하자 부인 한영복(78)씨에게 "가족.친지들이 있는지 잘 보라우" 라고 재촉했다.

황해도 연백 출신의 고재복(86)씨는 "회담 전에는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지만 만남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뜨거운 것이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심장이 요동쳤다" 고 말했다.

정상들이 만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방영된 12일 저녁(현지시간) LA 한인타운은 동포들의 눈이 TV 화면으로 쏠리는 바람에 업무가 일시 마비될 정도였다.

올림픽가의 한 한인 당구장에선 손님들이 TV 앞으로 몰렸으며 기원에서도 전원 대국을 중지했다.

재일동포들은 민단.조총련 가릴 것 없이 TV를 지켜보며 감격해 했다. 김재숙(金宰淑)민단 단장은 "너무도 가슴이 뭉클했다" 며 "회담 결과를 보고나서 조총련에 대화를 제의할지를 결정하겠다" 고 말했다.

재일동포의 차별문제를 다루는 '재일코리안인권협회' 서정우(徐正禹)회장은 "이번 만남이 재일동포 사회의 남(민단)과 북(조총련)의 관계개선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고 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 살면서 오늘처럼 기쁘고 뿌듯한 날이 없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일본의 대우도 달라질 것" 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재중국 한국인회의 신영수(愼榮樹)회장은 "이제야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응어리 하나가 풀리는 것 같다" 며 "도대체 오늘의 흥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부모님의 고향이 강원도 고성군 포외진이라는 재중 동포 함홍만(咸弘萬.극동선박항공회사 사장)씨는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왜 이제야 이뤄졌는지 모르겠다" 며 "이젠 중국인들에게 떳떳해졌다" 고 좋아했다.

모스크바대 유학생인 김선훈(노문학 박사과정)씨는 "러시아 TV들이 중계를 하지 않아 인터넷 동영상을 지켜보면서 우리 역사를 두 딸에게 설명해 줬다" 며 "회담이 잘 풀려 귀국시 북한을 경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워싱턴.뉴욕.베이징.도쿄〓김진.신중돈.유상철.오영환 특파원, LA지사〓김성태.김경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