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여성관점에서 기사 다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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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 유엔에서는 '여성 2000-21세기 남녀평등과 개발.평화' 란 주제로 세계여성대회(유엔특별총회)가 열렸다.

한국을 포함해 1백89개국의 정부 대표와 비정부기구(NGO)대표 1만여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세계여성대회는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인권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규모가 전세계에 걸친 지구촌회의라는 점에서 매우 비중이 큰 행사다.

또한 그 대회를 통해 여성인권의 현황과 쟁점들이 드러나고, 한국 여성의 지위는 어느 정도 수준에 해당하는지 비교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잣대의 역할을 한다.

중앙일보는 세계여성대회의 취지를 소개하고, 개막에서부터 폐막과 최종성명 합의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경과에 따라 대회 내용과 이슈들을 보도했다.

평소에 신문에서 여성과 관련한 기사들을 어떻게 얼마나 다루는지 관심이 있었던 터라 세계여성대회에 관한 보도를 주의깊게 살펴봤다.

중앙일보는 여느 신문에 비해 보도 횟수가 많았고, 내용도 전세계 여성의 삶의 질 현황, 각국 여성지위 비교 등 도표까지 곁들여 가장 충실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행사의 중요성에 비춰보면 중앙일보의 보도도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고 있어 영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여성인권의 현황과 관련해 어떠한 보고서를 준비한 것인지, 국내외 쟁점들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참가자들은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성과 관련해 한국의 신문들은 보도의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이를 취급하고, 어쩌다 주목을 받는 경우는 성적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 담겨 있는 사건이 태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이러한 현상은 신문보도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배치와 작동방식에 관련돼 있고, 여성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집단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권력의 진정한 주체로서 사회구성원인 '사람' 은 '남성' 을 중심으로 그 개념이 형성돼 있는 것이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뿌리깊은 역사적 연원을 바탕으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돼 있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언행으로 체화해 나타난다.

사람은 고유의 인격체이고,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되며, 각자의 존엄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에는 어떠한 이견도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지위에서 볼 때 여성이 이와 같은 온전한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여성들의 20~50%가 물리적 폭력을 당하고, 한국 여성의 경우 그 수치가 38%에 이른다는 사실(중앙일보 6월 8일자 세계여성대회를 대비한 리서치보고서)은 여성에 대한 일반적 홀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하겠다.

한편 절반의 성인 여성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다른 절반의 성인 남성이 양성의 차별관계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억압자의 지위에 고착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 또한 서로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는 원천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 돼 있는 것이다.

세계여성대회에서 여성의 인권문제는 남성도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남성의 역할이 주요 이슈로 부각했다고 하는데(중앙일보 6월 8일자) 이는 여성인권문제가 남성의 인권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는 신문들이 양성평등의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신문은 독자가 세계와 교류하는 일상적 통로이므로 신문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세계를 바꿔나가는 데 주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신문 독자의 절반은 여성이라고 가정할 수 있으므로 독자에 대한 배려의 측면에서도 그와 같은 노력은 필요하다.

모든 기사를 다룰 때 여성의 관점에서 의식적으로 반추해 보도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구체적으로는 여성문제에 관한 고정섹션을 두어 좋은 필자들을 발굴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사들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강금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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