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4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41. '광화문 용사' 이도윤

시인들이 시만 쓰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런 이는 없을 것이다.

대개 직업을 갖고 있는데 시 쓰는 일과 관련있기도 하지만 가끔 전혀 동떨어진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 PD인 이도윤 시인도 그런 예다.

이시인은 직업만 이색적인 것이 아니라 용모도 출중한 편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과는 달리 술을 마시면 울기도 잘하고 또 애교 섞인 주정도 많이 부렸다. 건강 문제로 의사가 강력하게 금주를 권했는데도 술을 끊지 않았다.

술을 마신 뒤에는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 배호의 '누가 울어 ' '아직도 못다한 사랑' 등을 자주 불렀다. 노래 솜씨가 하도 뛰어나서 '살아있는 배호' 로 통했다.

이 시인이 탑골에 온 어느날 너무 많이 술을 마셨다. 옆에는 이승철.박영근.이재무.장대송 시인 등이 있었는데 그 날은 이시인의 술주정을 차분히 받아주고 있었다. 물론 그들보다 이시인이 나이가 조금이라도 위였지만 그날만은 관계가 역전된 것 같았다.

"야, 그게 어디 니 잘못이냐. 어차피 터질 일이었고 너 또한 양심에 하나도 거리낄 것 없는데 뭐가 속 상하다고 울고 그래. 자 술이나 맘껏 마시자. "

"얌마 니들이 뭘 알아! 나 때문에 억울한 사람 목이 잘렸는데.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고 경찰도 먹고살기 위해선 데. 나 때문에 억울하게 목이 잘려서야 될 일이냔 말야. "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사연인 즉 이랬다. 당시 이시인이 보도국 기자로 있으면서 고속도로에서 '삥땅' 을 치는 경찰관들을 촬영해 보도함으로써 경찰관 서넛이 파면당했는데 그중 한 명은 현장에 없었지만 같은 조라서 억울하게 파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며 소송을 내고 이시인을 증인으로 요청했다는 것. 그러나 방송국 관례상 증언을 하지 못해 서류상으로 현장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지만 그 일이 잘못돼 결국 그 경찰이 옷을 벗게 됐다는 것이다.

방영된 내용이 일본 NHK TV에 그대로 보도되고 한국기자협회에서는 한국기자상을 준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방송국을 그만 둔다고 난리를 피운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난 뒤에 이시인은 보도국에서 스포츠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후 스포츠 쪽에서 PD로 일을 한다고 들었다.

어찌 보면 한없이 문약해 보이는 이야기인데 정작 이시인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광화문 용사' 였다. 광화문 용사라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거창한 시위나 독립투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87년 이후 정국이 한창 가파르게 대결구도로 가고 있을 때 이시인이 광화문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이 끝나고 선배 문인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의 일이다.

지금도 화장실 문제는 심각하지만 당시는 더했고 맥주를 마신 몸은 출렁대는 방광을 비워달라고 요란 법석을 떨었으니…. 이시인은 결심했다고 한다.

세상도 맘에 안 들고 그렇다고 그걸 못 참는 방광도 불쌍하고, 때는 일요일이라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으므로 얼마간의 호기와 저항의식으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순신장군 상이 볼 수 있도록 물줄기를 쏘아댄 것이다.

그러나 마른 모래에 몸을 감추며 흘러가는 물줄기가 멀리 가기도 전에 달려온 경찰에 의해 그는 붙잡히게 됐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광화문 용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