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퇴임 주한 독일대사 클라우스 폴러스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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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클라우스 폴러스(65)주한 독일대사는 "남북한 정상회담은 남북이 교류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3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정부의 만류에도 베를린에서의 연설을 고집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선언하는 장소로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를 택했던 게 분명하다" 고 말했다.

- 10년 전 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대사로서 마지막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소감이 남달랐을 텐데.

"남북한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남북이 합의한 7.4 공동성명은 추상적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협력할지가 불투명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런 모호성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남북협력으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이 공동의 관심분야를 찾아 교류와 협력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통일은 서두르면 안된다. "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 어디에 있었나.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 있었다. 밀림지역에서 유엔 선거감시단으로 활동하다 우연히 TV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봤다. (웃으며)처음엔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 "

- 남북이 정상회담을 한다는 걸 사전에 알았나.

"한국 외교통상부가 미리 연락해줬다. "

-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독일국민과 정부의 반응은.

"큰 관심을 보였다. 분단이라는 공통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다 정상회담 성사 발표 수주일전 독일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金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때 독일정부와 국민들은 남북관계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지만 정상회담까지 이뤄질 것으론 생각하지 못했다. 베를린 선언 직후 독일을 방문한 백남순(白南淳)북한 외상은 독일 외무차관을 만나 정상회담 가능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金대통령은 올 3월 9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증진, 한반도 평화정착, 이산가족교류, 남북특사교환을 제의했다)

- 金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이 선언을 베를린에서 한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나.

"틀림없이 역사적 의미를 고려했을 것이다. 독일정부는 한국정부측에 베를린 연설계획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미 국빈연설을 했는데 왜 또 연설을 하겠다고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측이 베를린 연설을 고집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

- 북한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내부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직후 김정일은 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한국과 서방에 대립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외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 이번 정상회담이 결국 성과없이 끝날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은데.

"45년 이후의 한국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양국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그의 목소리가 다소 강해졌다). 브란트 서독 총리와 슈토프 동독 총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동.서독 교류의 물꼬가 터졌다. 한반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이 가능성을 이용해야 한다. "

-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은 정상회담 성사를 즉각 환영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이들 4강과 남북한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정상회담에 대한 주변 4강의 관심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있다. 이번 회담은 북.미와 북.일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주변국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

-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金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밝힌 네가지 제안을 우선적으로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밝힐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

- 독일의 통일은 짧은 시간에 급격히 이뤄졌다. 한반도에서도 독일과 같은 방식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나.

"예측하긴 힘들지만 독일과는 다른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남북한이 서로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통일을 이루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 독일의 경우 통일 후 동독 출신 주민들의 소외감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다른 사회체제에서 살아왔기에 서로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특히 동독의 정치인들이 선거에 익숙하지 않아 서독의 전문 정치인들이 동독지역에서 많이 당선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는 제1야당인 기민당 당수와 국회의장 등이 동독 출신 정치인이다. "

- 막대한 통일비용이 경제에 적지않은 주름을 가져오지 않았나.

"통일비용은 91년부터 97년까지 7천억달러가 들었다. 하지만 통일로 인해 시장이 커지고 동독의 사회 기반시설을 이용하는 등 장점도 많았다. 물론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아직도 서독지역의 두배나 되는 것은 풀어야 할 과제다. "

- 한국의 경우 독일과 같은 막대한 통일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북한의 경제사정이 옛날의 동독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통일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일단 국경을 유지하면서 북한에 필요한 부분을 원조하고 서서히 통일을 향해 전진해 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

- 통일 후 국방비는 얼마나 줄일 수 있었나.

"동독 군대를 해산하고 국경주변의 군사시설을 철폐하느라 처음엔 오히려 국방비가 더 들었다. 하지만 통일 전에 정부예산의 19%를 차지하던 군사비가 이제는 10%로 떨어졌다. 군인들의 숫자도 대폭 줄이고 있다. "

-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통일에 관련된 문제를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가길 바란다. 남과 북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좋은 성과를 얻었으면 한다. "

- 오는 7월 정년 퇴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 부임지인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즐겁게 일했다. 우선 한국과 독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돈독했고, 한국인들이 독일 정부와 독일인에게 늘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줘 마음이 편했다.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 학자.관료가 많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독 양국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두 나라와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 이같은 우호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

<만난사람 김종혁 국제부 차장>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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