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5월을 '공동체의 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5월이 아카시아 꽃 향기속에 흘러가고 있다. 싱그러운 신록(新綠)과 꽃의 계절 5월. 5월은 지구촌을 힘찬 생명의 색깔로 공평하게 뒤덮는다.

5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게다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 역시 생명을 잉태시키는 존재다. 5월에는 정감 넘치는 날이 유난히 많다.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 날, 8일은 어버이 날, 11일은 석가 탄신일, 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성년의 날,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여기에 민중항쟁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민(民)을 나라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한 5.18까지 있다.

생명의 달, 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는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부모와 자녀가 따뜻한 손길을 각별하게 주고 받는다.

물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강렬한 '가족 이기주의' 를 통해 각종 반사회적인 행태를 낳는 기지(基地)이기도 하다.

'내 자식, 우리 식구만 잘 살면 된다' 는 우리 부모들?유별난 가족 이기주의는 비뚤어진 교육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출세 지상주의, 부정부패, 투기 등 사회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계간 '역사비평' 이 지난해 '20세기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열가지를 골랐을 때 첫번째로 꼽힌 것이 바로 가족 이기주의였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가족 이기주의를 "한국인의 가장 강력한 종교" 라고 진단한다.

가족 이기주의는 시민의식.공공의식을 마비시킨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에 대한 고려가 없어 사회를 메마르게 하고 민주주의 실현도 저지한다.

한국에는 '사회' 나 '공동체' 가 없고 각자의 울타리 속에 갇힌 가족만 있을 뿐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선진국에 이를 수 없다.

미국의 부모는 어린이에게 "남과 나누는(Share) 삶을 살아라" 고 항상 강조한다고 한다. 일본의 부모는 자녀에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마라" 고 귀에 못이 박이게 가르친다.

한국의 부모는 "(남을 이기고)출세해야 한다" 고 어릴 때부터 닦달한다.

한국 부모들의 이같은 교육은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살맛 나는 공동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할 때가 됐다.

몇년 전 프랑스 청소년체육부의 신세대 의식조사 결과를 보고 놀란 일이 있다. '이 시대를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을 묻자 '소외계층에 대한 손길' '에이즈와 마약 방지' '병든 자와 장애인 돕기' '환경보호' '제3세계 지원' '반(反)인종주의' 등 이웃에 대한 관심이 앞줄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필자는 그래서 5월을 가족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공동체의 달' 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자원봉사 같은 이벤트들을 집중시켜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꾸려보는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 것이었다.

다행히 근래 들어 가정의 울타리를 허물고 공동체를 겨냥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산 금정구 금샘마을 아파트단지 등의 공동체운동이 그런 예다.

인터넷에서도 남남이 모여 가족같은 공동체를 지향하며 정을 나누는 운동이 생겼다. 인터넷 모임 '가족' (family.sarang.net)이나 가족간 교류를 지향하는 사이트인 'elife21.com' , PC통신 나우누리의 '온라인 가족모임' (go family), 하이텔의 '사이버 패밀리' (go sg1070), 천리안의 '한가족 동호회' (go fam) 등이 그것이다.

클릭만 해도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코스타큐(kostarq.com)같은 사이트도 생겼다. TV의 백혈병 어린이 돕기 생방송 같은 경우 ARS 전화모금에 수만명이 동참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가능성이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이 이를 조직화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의 달' 이라도 만들어 우리가 이웃을 돌아보는 '희망의 쟁기질' 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소외계층을 그대로 두면 어느 가정도 사회불안이나 범죄 같은 부메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일 전국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