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숨은 화제작] '페르디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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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살인과 섹스를 무기로 대책없이 치고 달리는 로드 무비.

영어권에서 출시된 비디오 제목은 '악마와 춤을' (Dance with the Devil). 제목처럼 주인공 남녀는 잔혹성에 있어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은행강도와 마약 거래, 납치와 강간,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을 밥먹듯이 해치우는 잔혹성 속에 미묘한 유머 감각이 숨어있다.

여주인공 페르디타는 어느날 꿈을 꾼다. 재규어 한 마리가 그녀의 침실 속으로 들어와 잠을 잔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로메로를 만난다.

로메로는 재규어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한 신화 속의 악마에 비유된다. 첫눈에 상대를 알아본 두 사람은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며 멕시코를 누빈다.

윤리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면 영화적 재미를 느끼기 힘든 작품. 오히려 의미를 떠나 단순히 영화에 몸을 맡기는 편이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

굳이 분석을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스릴러물과 호러물, B급 오락영화를 마구 버무려 놓은 '비빔밥' 같은 영화다.

'액션 무탕트' (1993년)라는 데뷔작에 이어 '야수의 날' (95년)로 주목을 받았던 스페인 출신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97년작이다.

또 감독은 '펄프 픽션' 에서 여주인공이 담배를 손에 들고 앉아있는 유명한 장면을 '페르디타' 에서도 똑같이 재현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펄프 픽션' 이나 '저수지의 개들' 같은 타란티노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반길 작품이다.

스페인어 원제는 Perdita Durango. 주연 로시 페레스.하비에르 바르뎀.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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