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진타오 시대] 2. 남과 북 대하는 자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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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폐막한 16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베이징 AP=연합]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4월 중국을 찾았다. 후진타오(胡錦濤)가 국가주석에 오른 뒤 첫번째 중국 방문이었다. 당시 화제를 모은 것은 이 둘의 첫 대면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의 인사법에 따라 포옹을 시도했다. 반면 후 주석은 악수로 대신하려는 모습이었다. 짧은 순간의 어색함이 섬광처럼 강렬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뜻대로 세 차례의 포옹으로 끝났다. 그러나 후 주석은 못내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후 주석은 정통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지도자'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이 같은 그의 성향은 남북한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전망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전문가는 "과거 북.중은 혈맹 관계를 기초로 온실의 화초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젠 따질 것은 따지는 관계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으로선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 그리고 사회주의적인 유대감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던 장쩌민(江澤民) 등에게 기대할 수 있었던 우호적 유대를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북한이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통로는 당과 군이었다"며 "2002년 당을 장악한 후 주석이 이젠 군사위 주석까지 차지함으로써 북한이 그나마 강한 유대를 유지했던 또 하나의 채널이 좁아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북.중 고위층 군부 인사 간의 교류, 또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 간의 물밑 교류 등이 이제 모두 점차 '국가 대 국가'라는 현실적인 관계에서 조율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중국 관변 싱크탱크들이 조심스럽게 제기해 왔던 '중국 해방군의 6.25 참전 무용론' '북한은 귀찮은 이웃'이라는 시각이 힘을 더 얻어갈 전망이다. 이 같은 관점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지원, 또는 의미가 없어진 '혈맹'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결국 후 주석의 개인적 성향과 함께 북.중 관계는 다소 군색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측이다.

우선 점차 감소 추세를 보여 왔던 북한에 대한 중국의 무상 원조는 그 폭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지원 액수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과 중유 지원 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한 관계자는 "최근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던 중국의 화물 열차 수십량이 못 돌아오는 경우가 좋은 예"라며 "과거엔 이를 빼돌리려는 북한 사정을 중국이 눈감아 줬지만 이제 이런 상황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따질 것은 확실하게 따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북한은 한국.러시아와 경협 강화 등을 적극 모색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특히 2002년 '7.1 경제 개선 조치'를 취한 뒤 현재 물가 앙등과 환율 인상 등 경제 위기에 처한 북한이 한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대담한 경제 개방 조치를 취하고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과의 관계에선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큰 틀 아래 각종 경협과 인적.물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은 과거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욱 긴밀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후 주석의 제 4세대 지도부가 사회주의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적 성향은 양국 관계를 냉각시킬 수 있는 소재라는 게 일부 전문가의 견해다.

특히 중국이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東北)공정 등 강력한 민족주의 성향이 후 주석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을 경우 한.중 양국 관계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한 전문가는 "경제 발달을 이유로 한국을 비교적 우대해 왔지만 양국 간 경제력 격차의 해소로 이젠 그런 측면도 점차 바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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