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올림픽 5일째]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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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스, 헬라스-."

▶ 19일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1500m 휠체어 레이싱에서 각국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연합]

19일 그리스 아테네 하늘에 함성이 메아리쳤다. 장애인올림픽 육상 경기가 처음 열린 올림픽 주경기장. 헬라스(Hellas.그리스인들이 자국을 부르는 말)를 외친 사람은 그리스인이 아니라 중국 선수였다. 시각장애인 남자 멀리뛰기 결승전에서 6.4m를 기록해 금메달을 딴 중국 리두안(26)선수가 코치와 함께 트랙을 돌면서 헬라스를 외친 것이다.

경기를 관전하던 2000~3000명의 관중은 그를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헬라스"를 따라 외쳤다. 중국 선수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관중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에 서서 인사했을 때도 중국 관중뿐 아니라 그리스 국기를 몸에 두른 사람, 일본 국기를 흔드는 사람 등이 열렬히 환호했다.

이번에는 은메달을 딴 미국의 질레트 일렉시스(20)선수가 성조기 깃발을 흔들며 트랙을 돌자 관중은 역시 힘찬 박수를 보냈다. 또 멀리뛰기 선수들이 퇴장하며 서로 악수를 청하자 관중석에서 그리스.스위스 등의 국기가 교차했다. 잠시 후 여자 5000m 휠체어 레이싱 1조 예선이 끝났다. 휠체어 레이싱은 장애인올림픽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경기가 끝난 뒤 1위를 차지한 일본의 두시다 와카코(30)선수를 비롯, 2~4위에 오른 그라프 샌드라(35.스위스), 다웨스 크리스티(24.호주), 블로윗 시베리(24.미국)가 트랙을 천천히 돌자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끝까지 다퉜던 선수들이다. 선수들도 트랙을 돌 때 웃음을 보내고 어깨를 치며 서로 격려했다. 특히 처음부터 경쟁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친 도미니카의 딜론 아노엘라(49)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아 경기장에 들어오자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섭씨 30도 이상의 폭염이 계속됐던 지난 여름올림픽 때와 달리 아테네 주경기장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경기는 밤 12시까지 계속됐고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 가족과 관중은 자리를 뜨지 않고 이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지난 여름올림픽 대회 때 일부 종목에서 벌어졌던 국가.인종 간 갈등은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참관 중인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관계자는 "지금 관중과 선수의 모습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고 평했다.

한편 우리 선수 중 처음으로 육상경기인 포환던지기에 출전한 박세호(34.뇌성마비 1급) 선수는 세 번의 시도에서 규정 지역 밖으로 공이 나가는 바람에 실격 처리됐다. 박 선수는 2002년 4월 국방부 장관과 병무청장에게 "군대에 입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 1박2일간 철책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박 선수는 21일 자신의 주종목인 곤봉 던지기에 다시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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