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어머니, 우리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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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머니를 주제로 쓴 시 혹은 어머니를 화두로 쓴 사모곡의 시는 참으로 많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심금을 울리는 사모곡의 시, 그 시는 대부분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읊은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우리가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무량한 사랑은 자식으로서 평생 갚지 못할 사랑의 부채며 은혜다. 사랑과 헌신과 희생의 또 다른 초월적 이름이 바로 어머니이며, 신과 같은 등위로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을 길러내신 가장 넓고 큰 사랑의 품이 어머니의 품이다. 혈육의 피, 정신과 영혼의 피는 어머니라는 끈을 통해 자식에게 이어지고, 자식은 어머니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된 채 성장한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시인 조병화는 '시인의 램프'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목숨은 이승에 단 램프/ 아직은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남아/ 너를 볼 수가 있다'. 시인의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램프는 빛을 내며 타오르겠지만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모두 연소되고 사라지면 시인은 죽음(어둠)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명을 주신 어머니에 대한 예찬이다.

실제로 경기도 안성 난실리에는 작고시인 조병화의 별장 '편운재'가 있는데, 이곳에는 조병화 시인이 살아생전에 어머니 묘소도 함께 조성해 놓아 평소 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시인으로서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감동적인 사모곡 시 한 편 쓰고 싶지 않은 시인이 어디 있으랴만, 나의 경우는 더욱더 절실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한 사람을 적으라고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은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을지문덕'이라고 썼지만 나는 태연히 '어머니'라고 써서 같은 반 아이들의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밤에 덮고 자는 이불보다 더 큰 하늘과 같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어머니가 주신 하늘을 덮고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자랐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기도 했던 1940~50년대를 어머니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병든 남편을 병구완했고, 어린 네 남매를 길러냈다. 우리가 자랄 때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했고, 부산 충무동 시장에서 떡장수.술장수.국수장사를 하셨다. 우리는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고, 절구통의 떡을 치고, 맷돌을 돌리고, 콩나물에 물을 주고, 군불을 지펴 고두밥을 찌는 일을 거들었다. 막걸리 밀주를 빚다 밀주 단속반원에 걸려 승강이 끝에 곡괭이로 구들장 밑에 숨겨둔 술독을 펑펑 깨뜨리며 우시던 어머니,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들의 하늘입니다'.

그 어머니의 15주기를 맞아 4남매 중의 막내였던 김종철 시인과 '어머니, 우리 어머니'라는 형제시인 시집을 간행하게 됐는데, 이 시집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 시편이며 사랑의 시집이다. 김 시인은 '엄마 엄마 엄마'라는 시에서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가 '엄마'라고 말한다. 한 뿌리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시의 울림과 목소리는 또 다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과 정성은 다 똑같다. 자식으로서 평생 마음에 걸리는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머니 살아생전에 사랑의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정성을 담아 더 늦기 전에 어머니를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게 자식의 도리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게 바치는 나의 시 '사모곡'을 이 글에 붙인다.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김종해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