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아름답다] 남편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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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먹을 것 못먹고,땀빼기에 헉헉대며 시달렸을 당신, 이쁜 강혁엄마! 지금도 그날의 내 경솔함을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야.

결혼후 살림하느라 고생하고(남은 음식 버리지 못해 먹어치우는 등), 예쁜 강혁이 낳은 출산 후유증으로 갑자기 통통해진 당신 모습 보고 실망하여 무심코 던진 내 한마디 때문에…

지난해 여름 휴가때였지?

친구 부부와 놀러가 찍은 사진을 보며, 친구 와이프에 비해 여유(?)있는 당신 몸매를 가리켜 "강혁아 니네 엄마 꼭 산적같지?" 했던 철없던 남편-나, 공 보용. 지금 많이 반성하고 있어.

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싸늘해진 당신 표정과 그 자리에서 사진을 쫙쫙 찢던 터프한 모습, 절대 잊을 수가 없어.

그 후 당신은 정말 딴 사람처럼 변했지.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기름진 음식과 육류를 멀리하고, 풀뿌리만 챙겨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더니, 어느 날인가는 짠순이 당신이 엄청난 거금을 들여 한방병원에 다니며 침맞고, 한약 먹고, 맛사지 받고… 게다가 결혼후 처음으로 낑낑대며 운동까지!

살인적인 15㎏ 감량이라는 엄청난 결과에도 끝내 만족하지 않던 다이어트 집착. 당신에게 그런 끈기가 있을 줄이야. 급기야 영양결핍으로 합병증까지 얻게 됐잖아.

그후 병원에서 충고한대로 결핍된 영양소와 단백질 섭취하느라 다시 체중이 불기 시작한다고 투덜거리는 당신을 보면서 난 또 겁나기 시작해. 행여 당신이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하는 건 아닌가 해서.

결혼전 날씬했던 예전의 당신 모습도 좋지만, 강혁이와 나를 끔찍히 사랑해주는 지금 당신의 여유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진짜라구!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당신이 다이어트하기 힘드니까 내가 체중을 불리는 건 어떨까□ 우리집 갈 때마다 어머니 보기 민망해하는 당신, 이제 내가 지켜줄게. 나만 믿으라구.

◇ 공보용(35)씨는 아내 김미경(33)씨와 4년 전 결혼했으며, 현재 제일모직 남성복사업부 로가디스 머천다이저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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