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돈 보장” 미분양 판촉 과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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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좋은 투자처가 있어 전화 드렸는데요. 입주하면 수천만원의 웃돈은 붙을 겁니다. 웃돈이 안 붙으면 건설사가 책임집니다. 계약금만 낸 뒤 입주 때까지 그냥 갖고 있다가 팔면 돼요. 계약 마감이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두르세요.”

12일 낮, A건설사의 경기도 내 한 아파트 견본주택. 견본주택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80명쯤 돼 보이는 텔레마케터(전화 상담원)들이 연신 전화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들은 전화번호부 등을 활용해 해당 지역이나 인근, 혹은 먼 지역도 가리지 않고 전화로 미분양 계약을 유도했다. 한 텔레마케터는 “돈이 될 것이란 부분에 힘을 줘 말한다”고 귀띔했다.

요즘 서울·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판촉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년 2월 미분양분 양도세 감면이 끝나기 전에 한 채라도 더 팔려는 것. 특히 투자수요에 민감한 세금 혜택이 없어지면 그 이후에는 웬만한 유인에도 팔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서다. 금융조건 완화, 분양가 인하나 고가 경품에 이어 업체들이 막판 미분양 판촉을 위해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 ‘벌떼영업’.

벌떼영업은 주로 토지 기획부동산업자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걸어 판촉하던 방법으로 올 하반기 들면서 아파트 미분양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인천 B단지 등 20여 곳이 도입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업체 분양 담당자는 “분양가 할인 등은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마케팅인데 반해 벌떼영업은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는 것”이라며 “단지 특장점 위주로 집중적으로 홍보하기 때문에 효과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떼영업이 많아지면서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텔레마케터들은 대개 계약 한 건당 1000만원 안팎의 수익을 올린다. 그 때문에 계약건수를 늘리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개발 계획 등을 내세우며 과대 홍보를 하기 일쑤다. 10월 텔레마케터와 통화한 뒤 경기도 C단지를 계약한 최모(40·용인시)씨는 “알고 보니 단순한 구상단계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개발계획이어서 집값이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텔레마케터의 말을 믿고 계약한 뒤 계약 해지도 쉽지 않다. 텔레마케터는 시행사나 시공 보증을 한 건설업체가 고용한 게 아니고 주로 분양대행을 맡은 업체에서 쓰는 계약직이다. 시행사나 시공사 측이 모른다고 하면 계약자는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금융조건은 해당 금융기관에 물어보고 계약은 견본주택에서 텔레마케터의 말을 확인해 본 뒤 해당 분양업체 직원과 직접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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