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행복한 책읽기] '노자와 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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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노장사상은 유가사상과 더불어 중국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사상체계다.

그러나 노자철학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성, 그것도 여성의 성을 철저히 억압해온 유교적 속박의 그늘 아래 있었다.

'노자와 성(性)' 은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노자의 철학을 원시문화적인 성의식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 의 핵심을 이루는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검은 암컷이라 한다.

검은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라는 구절을 상세하게 분석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노자철학 속에 내포된 여성성, 혹은 여성숭배의 경향을 흥미롭게 밝혀낸다.

이 책을 보면 1930년대 이후부터 축적돼온 중국의 이에 대한 연구물이 상당량인 듯하다.

다양한 연구성과와 동서양을 넘나드는 원시사회의 풍부한 민속학적, 민족신화적 정보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저자는 노자철학을 풍요한 문화인류학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그 속에서 노자철학의 상징체계는 깊고 현묘한 비유를 드러내 보인다.

이 책에 의하면 '계곡의 신' 이나 '검은 암컷' 은 여성의 생식기, 즉 여성의 음부와 어머니의 배를 의미하며, 그것은 원시사회를 지배했던 여성 생식기 숭배의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계곡 혹은 '대지라는 자궁의 우묵한 곳' 은 하늘과 땅의 뿌리, 다시 말해 모든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귀착점이며, '그것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는 것은 인류 문화의 원형인 영원하고 기름진 다산생식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어머니를 말했고, 갓난아기를 말했고, 검은 암컷을 말했고, 물을 말했고, 부드럽고 약함을 말했고, 사랑을 말했고, 검소함을 말했으니 한 가지도 여성과 관계없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라는 말은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이 곧 만물을 낳고 기르고 영원한 생명의 고리를 이어나가는 여성성에 대한 강렬한 희구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자는 '도' 를 여성의 생식기에 비유하여 천지만물은 모두 그 속에서 나온다고 말하였다" 라는 말은, 노자의 '도' 가 엄격하고 금욕적인 정신의 자기절제를 요구하는 유교의 남성적이고 억압적인 '도' 의 개념과는 달리, 생산하는 여성의 기름진 '몸' 의 세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 도가사상은 '몸의 학문' 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에서 도의 근원을 찾는 노자의 사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명사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박혜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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