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학자들 '표현인문학' 공동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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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박이문 전 포항공대(철학).유종호 연세대(국문학).김치수 이화여대(불문학).김주연 숙명여대(독문학).정대현 이화여대(철학)교수.

이들이 모였다면 한국 인문학을 대표한다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중진학자인 이화여대 정덕애(영문학).이규성(철학).최성만(독문학)교수까지 더해 5년 간 공동작업을 해왔다면 범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인문학의 개념을 넓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머리를 맞대왔다.

유종호.김치수.김주연 교수는 국내 문단의 대표적 평론가들. 유교수는 40여 년 평단을 이끌어 온 현대문학사의 산 증인이며, 두 김교수는 문학평론가 김병익.김현과 함께 문학과지성사의 '4K' 로 불리며 문학과 지성의 사반세기를 이끌어왔다.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38권의 저서가 말해주듯 우리 사회에 지적 자양분을 제공해온 학자며, 정대현 교수는 인식론과 언어철학계를 이끌었다.

김치수 교수는 "같이 모이기도 어렵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학자들이 개인의 이름까지 포기하며 공동작업을 한 것은 국내 처음일 겁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는데 거의 1년이 넘게 걸렸지요" 라고 말했다.

이들 작업의 결실이 표현인문학. 이 개념은 문자에 의존하는 이해의 학문이었던 인문학이 더욱 발전한 개념으로 자신의 생각을 삶과 연결해 표현하되 그 방법은 영상과 디지털을 포함하는 토털개념이다. 특히 내용중에는 김우창(고려대).백낙청(서울대).조동일(서울대)교수 등의 인문학 비평도 포함해 관심을 끈다.

이를 찾아내기까지는 길고도 고단했다. 김치수 교수가 정교수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하고 유종호.김주연.박이문 교수가 뜻을 함께 해 모인 것이 1995년 여름. 이들은 한 달에 두 번은 만났는데 모일 때마다 반나절 넘게 난상토론을 벌였다.

워낙 개성이 강한 학자들인 까닭에 의견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일. 해를 넘기며 횟수는 줄었지만 토론의 열기는 여전했다.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사람이 더 필요하다. 젊은 학자의 의견도 담아야 한다" 는 의견이 모아져 정덕애.이규성.최성만 교수가 긴급 투입됐다. 토론 내용은 꼼꼼히 메모하면서 녹음도 했다.

토의 내용을 정리하는 대표 집필자도 돌아가며 맡았다. 철저하게 공동창작이 원칙인 만큼 정리된 내용은 각자 다시 읽어보고 문제를 지적하도록 했다.

김주연 교수는 "토론을 하고 초고를 썼는데도 돌려 읽어보고는 만족스럽지 않아 원고를 뜯어고친게 부지기수" 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초 3년만에 끝마치려던 작업은 5년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정대현 교수는 "공감대를 이룬 것이 표현인문학이었다" 며 "이는 모든 사람은 자기 성취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은 자기 표현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명제를 풀어줄 열쇠" 라고 말한다.

마침내 내주 이들은 집체작업으로 일군 공동작업물인 '표현 인문학-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 란 책(도서출판 생각의나무)을 내놓는다. 이 프로젝트는 95년 학술진흥재단의 도움을 받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주관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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