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난장이가 쏘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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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명작.고전이라는 책들은 많다. 그러나 그런 책들 중 지금까지 스테디 셀러 순위에 오르면서 실질적인 사랑을 받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조세희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문학과지성사.7천원)은 지금도 생동감 있게 물결치는 명작이라 할 만하다.

1975년 겨울부터 단편으로 발표되기 시작해 78년 연작소설 형태의 단행본으로 묶인 후 96년에는 1백쇄를 돌파했고, 지금까지 판매부수가 52만부(1백42쇄)를 넘었다.

현재도 교보문고 스테디셀러 9위에 올라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난쏘공' 은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한다.

현실 참여에 관심 깊었던 선배들이 나눠준 필독서 목록, 그 희미한 타자 글씨로 적혀 있던 책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당시 독재정권의 억압과 착취, 하층민의 비참한 현실을 소설이란 장르로 표현해낸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작가는 난쟁이 일가로 상징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의 노동자들의 삶을 때론 우화적으로, 때론 지성적으로 파헤친다.

그러면서 70년대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된 열악한 우리 노동 현실과 소외를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

실제 작가는 이 책을 "재개발 지역 동네에서 집을 부수겠다고 행패를 부리던 철거반과 싸우고 돌아와 쓰기 시작한 작품" 이라고 술회한다.

특히 이 작품은 난쟁이의 왜소하고 어눌한 모습을 통해 당시 광포한 산업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작가 특유의 빼어난 문장과 감수성으로 진한 감동을 준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

실제 작품은 현실을 이야기하되 사실적 묘사로만 일관하기보다 모더니즘적 기법으로 상황의 암울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아버지 세대의 감동을 아들 세대에 고스란히 전해주는 작품으로 최근 소설이 마치 일회용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세태에 경종을 울릴 뿐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 또한 맑고 깨끗하게 걸러줄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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