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주변국 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래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온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면서도 이 회담이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를 둘러싼 해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정책 최일선에 있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정상회담 전후의 한.미관계 및 미국의 대 북한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대사와 클린턴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처음 들었습니까.

“제가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언제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면 합니다.또 클린턴 대통령이 언제 이 뉴스를 접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처음 뉴스를 들었을 때 매우 흥분했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남북정상회담은 한국과 미국 모두가 오랫동안 원했던 것이고 워싱턴이 평양에 권고해온 사항이기도 합니다.워싱턴은 그동안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원을 희망한다면 한국과 대화해야 한다고 평양에게 줄곧 촉구해왔습니다.”

-한국의 일부 신문은 미국정부나 주한미대사관이 정상회담 발표에 앞서 한국정부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라고 부르는 한·미·일 3국의 공조체제는 어떤 경우에도 우방간에 상대방 국가를 당황케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제가 주한 미국대사로 한국에서 일해온 지난 2년 동안 한·미 협의체제는 끊임없이 가동됐습니다.양국 정부 모두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워싱턴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 매우 적절한 협의가 있었다고 봅니다.”

-왜 김정일(金正日)총비서가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인 얘기지만 김정일은 정상회담이 북한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해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확실한 것은 제가 김정일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대사님은 주한미군문제가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십니까.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한간의 정상회담입니다.따라서 의제도 남북한이 정할 문제입니다.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논의돼야 하는 문제임을 분명히 해왔습니다.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이유는 한반도에 안보 위협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포함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상회담 의제는 남북한이 정할 문제입니다.미국은 대북정책과 관련,이미 한국과 공동 목표와 목적을 설정해놓은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양과 양자 관계를 추진할 때도 미리 설정해놓은 공동 목표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물론 한·미·일 3국이 북한과 양자관계를 논의할 때 구체적인 내용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일본의 경우 주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지요.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이 다른 두 국가의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합니다.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갖고 있는 우려는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 이해가 형성돼 의견이 공유된 상태입니다.따라서 어떤 대립이 있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정상회담 발표 직후 워싱턴에서 나온 첫 반응은 코언 국방장관의 ‘주한미군은 장기간 주둔해

야 한다’는 것이었던 반면에 베이징의 반응은 ‘환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중국이 미국보다 정

상회담에 더 적극적이지 않나 하는 인상을 받습니다.이런 관측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미국과 중국은 모두 남북정상회담과 이후의 지속적인 남북대화와 협력을 적극 지지합니다.코언 국방장관의 말은 아마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마당에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오는 8월 15일 이전에 미국의 테러리스트 지원국가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이미 북한과 논의를 했습니다.평양은 자신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은 일은 북한이 실제로 ‘필요한 조치’를 행동으로 옮기느냐 여부입니다.저는 북한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를 바랍니다.그렇게 되면 미국은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상당한 진전이 될 것입니다.”

-올해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여부에 대해서는.

“미국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계속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의 요청에 따를 것입니다.”(미국은 지난해 WFP 요청으로 50만t 가량의 식량을 지원했음)

-미국은 지난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한다고 약속하고도 아직 실질적인 해제조치를 취하지 않

고 있습니다.언제쯤 해제할 예정입니까.

“약속이 지연됐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우리는 작년에 해제 발표를 하면서 경제제재 해제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지금도 해제 절차가 지속적으로 진행 중입니다.딱 부러지게 언제 해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북 제재를 해제한다는 미국의 계획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올해 안에 북·미 연락사무소가 개설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미국은 지난 95년부터 연락사무소 개설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입니다.우리는 평양에 파견하기 위해 외교관을 선발해 한국어 교육도 해놓았습니다.(웃음)그들 중 몇몇은 이미 은퇴를 해버렸습니다만.어쨌든 북한이 원하기만 하면 신속히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북 경협이 IBRD(세계은행)같은 국제금융기관을 포함한 다자간 틀에서 지원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일 이런 논의 끝에 대북 경협을 지원하는 북한개발프로그램 같은 것이 발족된다면 미국도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까.

“현 싯점에는 그같은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지금은 국제적 차원에서 대북 경협 프로그램을 실시하는데 꼭 필요한 정치적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남북정상회담과 그후 속개될 남북 당국간 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하면 이를 추진할 수는 있을 겁니다.미국은 오래전부터 북한이 국제사회의 여러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밝혀왔습니다.미국은 사실상 페리 보고서를 통해 국제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북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 고위급 인사의 워싱턴 방문 이후 金총비서가 워싱턴 방문을 희망한다면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것입니까.

“이 역시 당시 정치상황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원칙적으로 미국은 김정일의 미국 방문 가능성을 배척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페리 보고서가 마련해 놓은 ‘긍정적인 길’로 북한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입니다.미국은 북한당국과 김정일이 국제무대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북한도 인터넷 등을 통해 중앙일보를 읽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대사께서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金총비서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웃음)나는 대한민국에 파견된 미국 대사입니다.따라서 제가 북한 당국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경협 활성화 그리고 이산가족의 문제 해결에 진지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나는 북측이 남측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북측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 자체가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하십니까.

“미국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돼 꾸준히 지속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어떤 합의문이나 성명서의 발표가 아니라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남북한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어떤 틀을 짜는 초석이 마련되어 교류가 확대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최원기 기자

◇상세한 인터뷰 내용은 ‘월간중앙’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