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 실종된 해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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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화장실을 고급스럽게 바꿔 놓으면 뭐합니까. 새 비품을 갖다 놓은지 하루도 안돼 다 없어지는 걸요. "

16일 오전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許병조(57)씨는 "외국 관광객이 화장실에서 화장지가 없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 이라고 말했다.

許씨는 "해수욕장 화장실 비품이 금방 없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며 "공공물건을 내 것처럼 아끼는 의식이 언제 자리잡을 지 모르겠다" 며 안타까워 했다.

許씨는 올 2월부터 시민의식 실종 현장을 보아왔다.

해운대구청이 지난 2월 1천1백만원을 들여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 화장실 6곳을 말끔하게 단장했다.

그리고 손 말리는 기계(핸드 드라이기)를 설치하고 물비누.소변기 세정제.악취 제거제.고급 화장지.수건을 비치, 호텔 화장실 수준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해수욕장 임해봉사실 옆 제3화장실의 경우 수건.휴지.물비누.그림액자.꽃 벽걸이 등이 30분도 안돼 모두 없어졌다.

20만원에 구입한 핸드 드라이기는 이틀 후 사라졌다. 구청측이 그림액자와 꽃벽걸이를 다시 구입해 접착제로 붙여놓았지만 하루만에 그림액자는 파손되고 꽃은 사라졌다.

구청은 접착제 붙인 자국이 남을까봐 파손된 액자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해운대구청 환경청소과 화장실 담당 李상훈(49)씨는 "해수욕장 주변 화장실 비품 구입비가 예상보다 40만원 더 들어가 추경예산을 신청했다" 며 "공중화장실을 내집처럼 깨끗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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