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 NGO] 버스기사들이 펼치는 '승객 권리찾기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울 정릉에서 개포동을 오가는 16번 시내버스 운전기사 손신철(孫信喆.32)씨는 인터넷 공간에서 '레이몬(ramon)' 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 인사다. 시내버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시민들에게 신고정신을 요구하는 그의 글은 사이버 공간에서 버스기사와 승객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공항버스 601번을 운전하는 유종선(兪鍾善.44)씨도 시내버스에 대한 합리적이고 온당한 지적으로 상당한 '팬' 을 확보한 사이버 전사다.

이들 버스 기사가 도시의 '무법자' 로 불리는 시내버스에 대해 사이버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인터넷 공간에 '시내버스 바로세우기' 이하 시바세(http://members.tripod.co.kr/ramon)란 사이트를 개설, 난폭운전.신호위반.불친절 사례를 고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내버스의 횡포를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다.

'시바세' 가 개설된 것은 올 1월. 3년 전부터 시내버스를 운전하던 孫씨가 지난해 통신에 자신의 운전 경험을 토대로 느낀 생각과 시내버스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솔직한 글에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자 아예 사이트를 개설했다.

"처음에 운전기사를 시작할 때는 정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준법운행을 하다간 오히려 욕을 먹게 되는 현실에 너무도 많은 갈등을 느꼈습니다. "

예컨대 신호를 제대로 지키고 운행하면 앞뒤 차량과의 배차 간격도 제대로 맞출 수 없는 실정에 좌절감을 느꼈다. 준법 운행도 승객들이 "왜 그렇게 천천히 운행하느냐" 며 질책을 해대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기 반성에서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동참없이는 버스의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승객권리찾기운동으로 확대했지요. "

카메라 출동이란 코너를 통해 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택시들의 생생한 장면도 실었다. 불법운행을 보면 운전기사에게 1단계로 충고하기, 2단계 신고하기, 3단계 안타기 등을 호소하며 시내버스 회사의 전화번호와 신고 방법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올렸다.

차츰 '시바세' 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매일 1백여명의 네티즌이 조회할 만큼 호응이 컸다.

그러나 "운전기사가 기사편을 안든다" 며 불만을 나타내는 동료들도 늘어 孫씨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이버 동지가 兪씨. 4년간 기사생활 중 노조활동도 했던 兪씨는 "회사나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텐데 어려운 일을 한다는 생각에서 동참하게 됐다" 고 말했다.

요즘 '시바세' 는 한창 기세가 올라 있다. 서울 강남의 영동네거리 신호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서울시가 이를 곧장 받아들여 시정하기도 했다. 시내버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많은 글에 서울시가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구의 운전기사인 '삐에로' 씨, 회사원 '지나' 씨, 전 운전기사 '철인' 씨 등도 '시바세' 를 적극 돕고 있다. 사이트를 운영하다 보니 "깨어 있는 시민 만이 시내버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 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시민과 기사 모두가 참여하는 풀뿌리 운동으로 편안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시내버스를 꼭 만들어 내겠다" 고 말했다.

문경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