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극단을 찾아서] 4. 의정부 '무연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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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의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연시(巫戀詩)는 지방극단으로 분류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버스로 1시간이면 충분히 대학로에 닿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을 뜯어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어느 곳보다 지방문화 창달에 분투하고 있다.

서울에 인접한 까닭에 서울과는 다른 연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의정부 주민이 주로 외지인이라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도 무척 힘겨웠다.

의정부가 고향인 김도후 (38)대표는 "정말 고생을 많았죠. 이제야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3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1만명까지 늘릴 겁니다" 고 말한다.

무연시의 보금자리를 방문했다. 의정부와 포천의 경계인 천보산 밑자락에 '도후연극산방' 간판이 보인다. 축사를 개조한 허름한 곳이다. 60평의 공간을 극장.숙소.사무실 등으로 살뜰하게 나눠 쓴다. 슬레이트 지붕에선 도둑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장난치고 있다.

"앞으로 탁 트인 산이 우리의 무대입니다. 마음만큼은 부자라는 뜻이지요. " 김대표의 걸죽한 음성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 생기는 자신감 비슷하다. 그럴 만도 하다.

극단이 태어난 때는 1986년.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모여 경기 북부 최초의 전문극단 '제3세계' 를 창단했다.

소극장을 마련하고 주로 실험극을 올리며 활동했으나 88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단원들은 94년 8월 다시 뭉쳤다. 극단명을 '한샘' 으로 바꾸고 소극장도 열며 재기를 노렸다.

공연도 활발했다. 그러나 96년 8월 뜻밖의 암초를 만나 또 침몰했다.

당시 극장 옆에 어린이학원이 있었는데 "학원 6m 이내에 청소년 유해시설은 설치할 수 없다" 는 교육법에 따라 극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문화공보부가 연극 소극장을 영화관처럼 청소년 유해시설로 유권해석한 것. 지금은 법이 개정돼 해프닝으로 기억되지만 당시의 충격은 대단했다.

그해 9월 단원들은 짐을 꾸려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서 연극의 열정을 태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98년 2월 '한샘연극실험실' 을 열며 고향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도 운명은 기구했다. 물난리를 만나 소품과 세트를 모두 잃고 말았다.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온 때는 98년 10월. 분위기를 쇄신할 요량으로 극단도 '무연시' 로 개명하고 한샘은 아동극 전문극단으로 재출발했다.

3전4기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미친 짓이지요. 그래서 팔자라고 생각해요. 연극의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신념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김대표의 회고다.

그동안 활동이 자주 끊긴 만큼 요즘은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1주일 정도 쉬었으면 좋겠다' 는 일부 단원의 푸념처럼 전국에서 밀려드는 초청공연에 정신이 없다.

성인극.아동극을 겸비한 까닭에 고정 레퍼토리도 풍부하다.

극단 색깔도 선명해 서울 공연작의 '재탕' 을 거부한다. 외국 연극양식을 우리 것과 접목하는 데 주력한다.

셰익스피어의 '헛소동' 에 정선 아리랑을 결합한 '헛소리 아리랑' 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올 7월에는 부산.서울팀을 불러 제1회 의정부 전국아동극 축제도 열 예정이다.

글.사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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