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낳는 사회] 4. 미리 가 본 고령사회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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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령 사회인 경상북도 의성군의 한 경로당에서 80대 노인들이 화투를 치며 소일하고 있다. 의성=조문규 기자

*** 지금 경북 의성군은 2030년 한국의 모습

경상북도 의성군. 면적 1176㎢, 인구 6만8372명. 의성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지난해 23.6%를 넘었다. 2030년. 미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때가 되면 65세 노인이 전체 인구의 8.3%(2003년 기준)에서 23.1%에 이를 전망이다. 의성군의 고령인구 비율이 이처럼 높은 것은 이농(離農)현상에 따른 측면이 많다. 의성군을 2030년 미래 한국의 축소판으로 보기에는 무리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회 현상은 미래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북 의성군 르포를 통해 향후 우리의 저출산.초고령 사회 모습을 미리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 13일 오전 경북 의성군 읍내 시장.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백화실(92.여)씨가 시장에 좌판을 폈다.

"살기도 빠듯한 외아들에게 손을 내밀 수 없으니 이 나이에도 내가 나올 수밖에…."

5000원짜리 '몸뻬' 바지를 팔아서 먹고사는데 한 달에 한두벌 팔기가 버겁다는 설명이다. 아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백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간다. 다인면 외정마을의 한 상가(喪家)에선 지난 6월 노인 5명이 상여꾼으로 나섰다. 친지가 별로 없는 집인 데다 마을에서 상여를 멜 만한 30~40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인 김주원(38)씨는 "70대 이하는 마을 일을 안 할 수 없는 처지"라며 "30대는 어린아이이고 60대는 청년인 셈"이라고 말했다.

의성 군청 관계자는 "초고령사회가 되다 보니 노인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젊은이들도 각종 부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노인 중심 사회로 바뀌어=의성 읍내에 있는 공생병원에는 60대 이상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병원에는 노인성 질환인 치매.중풍 환자를 치료할 신경과 의사가 없다. 병원 측은 "의사가 부족해 공중보건의를 쓰는 실정"이라며 "하지만 올해 경상북도에 배정된 신경과 공중보건의는 4명뿐이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현재 의성군에는 경로당이 445개 있다.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합친 학교(74개) 학급수(359개)보다 더 많다. 노인 시설에 들어갈 예산을 매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게 군청의 설명이다. 이미 노인 복지에 전체 군 예산의 3.5%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예산 비중(0.4%)의 8배 수준이다.

반면 일하고 세금 내는 청.장년층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40대의 한 주민은 "마을이 노인 중심으로 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고생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다"며 "마을에 큰일이 생길 땐 일손까지 부족해 곤란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성군은 지역 내 근로자 평균 연령을 40대 중반으로 추정했다.

군청 관계자는 "이곳의 기업들은 40대 초반 근로자라도 구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여년 전에는 보육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주민의 건의가 있을 정도로 젊은 근로자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기존의 독신자 기숙사를 아예 없애거나 가정집으로 개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적으로는 지난 2분기 처음으로 40대 취업자 수가 30대 취업자 수를 추월했다. 근로자 고령화 경향 때문이다.

◆ 기업들 외국인.노인 노동자로 채워=의성군 내 기업들은 인력이 부족하자 외국인과 노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일부 기업들은 중국 등으로 떠나고 있다.

읍내에 있는 모터 제조업체인 고아정공. 이 회사의 생산직 직원은 모두 80명이다. 그런데 이들 중 힘을 써야 할 일은 외국인 근로자(13명)와 병역특례 근무자(10명)들이 도맡아서 한다. 임이상 관리과장은 "기업들이 숙련된 근로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면 공장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의성군의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400명에 육박한다. 5년 새 두배로 늘었다. 최근에는 노인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다는 목소리다. 섬유업체인 서진섬유 관계자는 "노인들은 기계 조작이 서투르고 사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생산 라인에 직접 투입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 지역 농공단지에 입주해 있던 한 컴퓨터 부품 업체는 지난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근로자 구하기가 어렵고, 임금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의성군 내 사업체 수(4412개.지난해 기준)는 최근 3년 새 544개가 줄었다.

군 살림도 점점 쪼들리고 있다. 지방세인 군세는 2002년 현재 89억원을 거둬 전년 대비 2억원이 줄었다. 생산인구, 기업체 감소 등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등과 같이 고령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국가의 경우 노동력 감소로 인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0.25~0.75%씩 떨어지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의 양희승 연구원도 "저출산-고령사회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노년층을 지속적으로 재교육시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시래(팀장), 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신성식.신예리.박혜민.김영훈.김정하.하현옥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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