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간질환 악화로 사망한 회사원 입증자료 있어야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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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고법 특별11부는 17일 만성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돼 숨진 섬유회사 직원 이모씨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하루 여덟시간씩 일했던 이씨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씨가 간경화에 걸린 것은 평소 앓던 지병인 간염이 악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특별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의 질병이 더 악화됐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간질환 자체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씨는 1978년 이 회사에 들어온 뒤 원단 입출고 및 노무관리를 맡아 하루 여덟시간가량 일했으며, 91년 걸린 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돼 통원치료를 받다가 98년 5월 숨졌다.

재판부는 "이씨의 경우 지나치게 많은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업무 내용도 입사 이래 20여년간 꾸준히 해온 터라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었을 것으로 보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많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간질환에 영향을 줬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있을 때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추세다.

지난 5월 행정법원은 간암에 걸린 KT 영업직원 최모씨가 "과중한 업무 탓에 병이 생겼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최씨의 경우 근무시간이 하루 17시간에 이르렀고, 새 업무를 맡은 뒤 정상이던 간수치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이 병원 진단서 등으로 입증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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