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인’ ‘노숙인’ 명칭 ‘홈리스’ 로 바꾸려는데 더 좋은 대안 없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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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제처에서 법률안 심사를 맡고 있는 제가 ‘독자에게 묻습니다’ 코너의 문을 두드린 것은 여러분의 지혜를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랑인’이나 ‘노숙인’이 어떤 분들을 뜻하는지 충분히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일정하게 사는 곳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하지만 용어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건복지가족부가 이들 용어를 대신해 ‘홈리스(Homeless)’를 공식 법률용어로 삼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지난 8월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번 법 개정에는 앞으로 ‘부랑인’과 ‘노숙인’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정책 의지도 반영돼 있습니다.

입법 예고 후 법제처에서는 ‘홈리스’가 법률용어로 좋은지를 검토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글단체가 여기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부랑인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들의 사회적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어떤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외국어를 법률용어로 사용하면 국민들의 언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란 얘깁니다. 한글단체는 대신에 ‘한둔인’ ‘거리민’ ‘한데인’ 등을 추천했습니다. 저도 ‘홈리스’가 알기 쉬운 우리말을 법률용어로 사용한다는 기본 원칙에 안 맞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기관·단체의 입장이 맞서면서 의견 조정을 위한 회의가 그동안 두 차례 열렸습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글단체, 부랑인·노숙인 시설 관계자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홈리스’는 법률용어로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글단체가 추천한 ‘한둔인’ 등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익숙하지 않아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덜한 ‘노숙인’으로 용어를 통일하자”는 대안이 제시됐지만 부랑인·노숙인 시설 관계자들은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입니다.

참고로 2005년 7월 한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가 ‘부랑인’을 대체할 수 있는 용어를 공모한 결과 ‘햇살민’ ‘새삶인’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부랑인’ ‘노숙인’을 ‘홈리스’로 바꾸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현행 법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까요? 두 용어를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용어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이 의견을 보내주시면 법률안이 만들어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담긴 참신한 아이디어, 기다리겠습니다.

yumip@joongang.co.kr

◆‘독자에게 묻습니다’ 정부·단체에도 기회=‘독자에게 묻습니다’에 대한 호응이 뜨겁습니다. 법제처에서도 이 코너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기자뿐 아니라 정부나 기관, 단체에서도 특정 현안에 관한 독자 의견을 구할 수 있도록 ‘묻습니다’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쌍방향 소통이 활발해지길 기대하며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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