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모르는 사람들이 민생 내세우면 민생 어려워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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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경제 사안을 놓고도 정부 부처마다 말이 다른 '갈지자형'정책 혼선이 문제." "말로만 시장경제지 들여다 보면 반(反)시장 정책 일색이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답을 찾자는 취지로 마련된 학술 토론회가 참여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의 '성토 자리'가 됐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정책과제'세미나에서 최광 국회 예산정책처장은 "쫓겨날 각오를 하고 말한다"며 "참여정부가 말로는'시장경제가 경제정책의 기조'라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반시장적 정책의 홍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파트 원가 공개▶재벌 총수와 금융기관장에 대한 갖가지 압력▶소비자 주권이나 공급자 자율을 무시하는 교육 정책▶노조에 치우친 노사관계 유지▶언론시장에 대한 제한 정책 등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또 "진보 성향이 강한 17대 국회가 개혁을 빌미로 시장 억제적 입법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며"과거 성장 위주의 정책에 대한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한 채 '대중적 인기몰이'식의 경제정책은 혼란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주제발표 말미에 최 처장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민생과 평등을 내세울수록 시장은 민생을 더욱 어렵게 하고 불평등을 확대한다는 식으로 '복수'를 한다는 게 증명된 역사"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경희대 권영준 교수는 "현 정부의 문제는'좌파적'경제 정책이 아니라 같은 경제 사안을 놓고도 재정경제부 장관이나 청와대 등 부처마다 엇갈리는'갈지자형'혼선"이라고 꼬집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바람에 금융 행위를 규율하는 '게임의 룰'이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LG카드 사태 처리를 들었다. 그는 "미봉책으로 카드사태 위기를 덮으려고 금융권을 동원하는 바람에 '적자생존'논리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카드사 문제는 아직 제대로 처리가 안 됐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종합 토론에서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현재 국가가 추진하는 수도 이전 등 각종 정책은 개혁이 아닌, 변혁"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라고 말했다. 나 교수는 특히 경제 외적인 부분에서 기업과 국민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초조감 때문인지 마치 과거의 모든 문제를 다 꺼내놓고 해보자는 양상"이라며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고려해 봐야 할 시기"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분배를 이야기하면 '좌익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 오히려 반시장적"이라면서도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분배.성장 어느 쪽에도 확신을 주지 못하고 일관성 없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이날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정책과 개혁 상황을 '구름에 싸인 달'에 비유하며 "언젠가 구름이 걷히면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이나 남미식 장기 침체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은 근거가 희박하고 대안이 없는 비판"이라며 "개혁의 방법이나 수단이 잘못됐다면 얼마든지 비판하되 대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날 최광 예산정책처장의 발언에 대해 "예산정책처장 자리는 자기 목소리를 내라는 자리가 아니고, 국회의원이 예산 정책에 관해 활동하는 데 치우침 없이 정보를 제공하라는 자리"라면서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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