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지구촌 동심] 下. 아프리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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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 사하라사막과 인접한 카메룬. 면적(47만5천㎢)은 한반도의 두배가 넘지만 인구(1천4백여만명)는 우리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카메룬의 5대 도시 중 하나인 바민다에 사는 미혼모 애블린(23)의 세살 난 아들 알란위는 요즘 '유전병' 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출산 후 2개월여가 지나며 주기적인 고열에 시달려 왔던 알란위는 올 초부터 폐렴 등 합병증 증세까지 나타나 종합병원에 입원했지만 주치의는 "5월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 말한다.

알란위가 앓고 있는 병명은 에이즈. 에이즈를 신의 형벌로 여기는 카메룬에서는 에이즈란 병명 자체를 금기시해 이를 유전병이라 부른다.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바민다 국립의료원이 이 지역 14세 이하의 어린이 중 에이즈 검사를 받은 5백여명의 에이즈 감염여부를 분석한 결과 5명 중 3명꼴인 2백89명이 양성(감염)반응을 나타냈다.

주민들 대부분이 7달러(약 7천여원)쯤 드는 에이즈 검사를 받을 형편이 안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어린이 에이즈환자는 집계 수치의 열배가 넘을 것이란 게 국립의료원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내과전문의 아추 박사는 "수도인 야운데나 바민다 등 대도시 거주 어린이 가운데 절반은 에이즈에 감염됐을 것" 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정부는 사하라사막 주변 아프리카국가의 에이즈 감염자가 2천3백여만명에 달하고 하루 평균 5천여명의 새로운 감염자가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남부 짐바브웨나 보츠와나의 경우에는 성인 4명 중 1명꼴로 에이즈에 감염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에이즈 감염사실을 모르거나 감염진단을 받아도 이를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출산을 계속한다는 사실.

알란위의 죽음을 앞둔 애블린은 "다시 결혼해 아기를 3명쯤 더 낳고 싶다" 고 말했다.

바민다 교외에 사는 지아베스(11)는 고아다. 2년 전 아빠와 엄마가 몇개월 차이로 앓다 세상을 떠났다.

지아베스 역시 부모가 에이즈에 감염됐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아주 나쁜 것(the very bad thing) 때문에 자신이 고아가 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국제보건기구(WHO)와 유엔 산하 USAID가 공동 조사한 에이즈 실태에 따르면 카메룬에서 에이즈로 고아가 된 어린이는 7만4천여명(1997년말 기준).

카메룬 전체인구가 1천4백여만명이라는 점과 부모의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아들이 절대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집계된 에이즈 고아수는 엄청난 규모다.

통계에 따르면 잠비아.말라위.르완다.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국가의 고아 4명중 1명이상이 에이즈 고아로 나타나고 있다.

카메룬 보건당국은 종합병원 등지에 "에이즈는 더이상 소문이 아니다" 는 포스터를 붙이는 등 계몽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에이즈 확산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여전히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아주 나쁜 것은 부모와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야운데.바민다(카메룬)〓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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