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개선 권고안] 내용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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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계은행(IBRD)의 지원을 받아 추진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작업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재계가 반발하는 등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사.감사를 선임.해임하는 문제에서부터 장부열람권.대표소송권.이해관계자 거래 등 기존 대주주나 오너의 권한을은 대폭 축소하는 데 비해 사외이사와 소액주주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권고안은 특히 ▶국제기구의 자금 지원으로 이뤄진데다▶정부가 용역을 준 자문단이 작성했고▶자문단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만든 것이어서 무게가 있다.

자문단은 한국의 경제 개혁을 위해선 선진형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선 혁신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작업을 주관하는 법무부는 내년 입법을 목표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측면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달 중 있을 권고안 제출을 계기로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둘러싼 찬.반 공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 주요 내용과 파장〓권고안은 ▶이사.감사?권한을 강화하고▶이해관계자와의 거래를 함부로 못하게 하며▶소액주주의 회사 감시기능을 쉽게 하고▶기업 인수.합병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1998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만들 당시 재계가 강력히 반대했던 집중투표제.단독 주주권.집단소송.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표소송 등이 이번 권고안에는 모두 들어갔거나 강화됐다.

따라서 이 권고안이 채택되면 우선 이사 선임에서부터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권고안은 사외이사가 과반수인 이사추천위원회에서 사외이사는 물론 집행이사도 추천토록 하고 있다. 또 1주만 가진 주주라도 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이렇게 양 쪽에서 추천된 후보들은 모두 한장의 투표 용지에 기재해야 한다.

주주마다 후보를 추천할 경우 후보가 수십, 수백병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오너, 대주주가 임의로 이사를 결정, 발표하던 과거의 방식은 사라지게 되는 것.

집중투표제도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장치다.

지금은 상법에 도입돼 있지만 의무조항은 아닌데 권고안에서는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도록 의무화했다.

권고안은 또 이사들의 시차(時差)임기제를 금지함으로써 집중투표제와 더불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문호를 크게 넓혔다.

이사의 임기가 동일해지고 한 이사를 해임하면 다른 이사까지 모두 해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고안은 또 '이해관계자 거래' 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도 도입했다.

대주주와 계열사간, 계열사와 계열사간 거래뿐 아니라 임원과 주주, 그들의 친인척과 그들이 경영하는 회사와 계열사간의 거래까지 포함해 이 거래 규모가 대규모인 경우 이해관계가 없는 사외이사와 주주들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오너가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납품권을 주는 등 문제를 사전에 원천봉쇄하자는 것이다.

◇ 권고안이 나오기까지〓세계은행은 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에 금융및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기술차관 명목으로 4천8백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이중 일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용' 으로 지정됐다.

법무부는 이 자금을 이용해 제도 개선에 나섰고 미국이 주축이 된 국제 컨서시엄 자문단에 권고안을 만들 것을 용역을 의뢰했다.

자문단은 쿠더트 브라더스(Coudert Brothers)법률사무소와 스탠포드대 법과대학원, 국제개발법률연구소(IDLI)및 한국의 세종법무법인이 컨서시엄으로 구성했다.

자문단은 지난해말 초안을 작성한뒤 전경련.대한상의.기협중앙회.상장사협의회등 경제단체와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회햇다.

자문단은 현재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최종 의견을 수집중으로 5월 중순 최종안을 법무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최종안을 받은뒤 상법 개정에 착수하는 한편 재경부등 경제부처와도 협의할 예정이다.

◇ 전망과 남은 일정〓김우현 법무부 검사는 "자문단의 최종안이 나오더라도 이는 권고안일 뿐" 이라고 말햇다.

그러나 재계는 현대그룹의 상속 파동과 구조조정본부의 해체 여부 등을 둘러싼 정부-재계간 갈등이 있은 직후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여론의 풍향에 따라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개선 작업 추진 일지 및 남은 일정

▶1997~8년〓세계은행, 한국의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위한 기술차관 4천8백만달러 제공

이 차관 중 법무부에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제 개선 용도로 45만달러 지원

▶99년 8월〓법무부, 쿠더트 브라더스.세종법무법인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과 용역 계약

▶99년 9~10월〓자문단, 서울에서 경영자.은행가.변호사.교수.사회단체 대표 및 정부 관계자 참석한 가운데 4차례 회의 개최

▶99년 12월〓자문단, 서울서 권고안 검토 위한 워크샵 갖고 초안 작성

▶2000년 1~4월〓자문단, 전경련 등 경제단체및 각계 전문가 의견 수렴

▶4월 20일〓전경련, 회장단 회의서 적극 대응하기로 결정

▶5월 중순〓자문단, 권고안 최종안 법무부에 제출

▶6월 이후〓법무부, 상법 개정 착수 및 증권거래법.공정거래법 개정 위해 관계 부처 통보.협의 시작

▶6월〓전경련, 국제 세미나 열고 정부에 재계 의견 제시

▶2001년〓정부, 자문단 권고안 기초로 공청회.입법예고 등 거쳐 상법 등 관계 법령 국회 상정

▶2002년〓새 상법에 따라 기업지배구조 개선 제도 시행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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