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혁파·보수파 갈등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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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란의 새 국회 개원(5월 28일)을 한달가량 앞둔 25일 이란 대학생 수천명이 길거리로 몰려 나왔다.

수도인 테헤란을 비롯, 남부지역 시라즈와 북부의 하메단 등 이란의 주요 도시에서 대학생들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 대상은 보수파. 특히 최근 보수파에 의한 개혁파 신문의 폐간조치는 '쿠데타' 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보수파를 강력 규탄했다.

대학생들은 일반국민에게 "보수파의 개혁파 탄압조치에 침묵하지 말라" 고 호소하고 있다. 모하메드 하타미 대통령에 대해서도 "보수파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본격화하라" 고 촉구했다.

대학생들의 보수파 규탄시위가 확산되자 26일 하룻동안 전국 17개 대학이 휴교를 결정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해 7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 이후 제2의 보.혁간 정면 충돌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고 보도했다.

보수파는 그러나 대학생들의 시위속에서도 2월 총선결과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했다. 이란 관영 IRAN은 혁명수호위원회가 25일 총 2백90석 가운데 1백85석의 당선자만을 공식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1백여석은 재검표나 재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30석 중 29석에서 개혁파가 승리한 테헤란시에 대한 투표결과를 전면 무효화시켰다.

아야툴라 하메네이 최고 종교지도자는 혁명수호위원회의 발표 직후 "이슬람의 원칙을 존중한 결정" 이라며 환영했다. 그는 24일에도 "개혁파 신문이 이슬람 원칙을 파괴하는 적들의 근거지로 변하고 있다" 며 13개 신문의 폐간을 지지했다.

보수파는 또 하타미 대통령에 대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그가 추진하겠다는 '시민사회와 자유' 의 의미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이슬람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인 셈이다.

또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1979년 이란 혁명과정에서 반혁명을 꾀했다는 미 언론의 최근 폭로를 근거로 들며 국민들의 반미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슬람체제를 위협하는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학생들의 가두시위가 폭력양상을 보일 경우 언제든지 사회질서 유지를 내세워 사법권과 군대 등 물리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개혁파 지도자들은 학생들의 시위를 조바심 속에 바라보고 있다. 폐간당한 개혁파 신문의 발행인들은 "사회혼란과 긴장조성을 통해 권력유지를 꾀하는 무리들이 있다" 며 "폭력사용은 보수파의 무력개입을 불러오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고 우려했다.

하타미 대통령도 "어떠한 경우에도 법과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 며 학생들을 달래고 있다.

이란 국민은 97년 대선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개혁파를 지지했다. 2월 총선에서는 72%의 유권자가 개혁파에 표를 몰아줬다.

그러나 개혁의 수레바퀴를 가로막으려는 보수파의 필사적인 저항이 본격화하면서 국민들 사이에도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한 젊은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수파의 개혁저지가 성공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면서도 "그러나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떤 혼란과 분쟁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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