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 '흔적들' 창간…6개언어 동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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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내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6개 언어로 동시 출간되는 학술지가 선보인다.

오는 9월께 나올 예정인 반연간지 '흔적들' (국제명 : Traces)이 바로 그것. 강내희(중앙대 영문학).김은실(이화여대 인류학)교수 등 7명으로 구성된 '흔적들' 한국편집위원단은 이 학술지를 일본.중국.미국.프랑스.독일 등 5개국의 편집위원(학자)들과 함께 제작해 6개 국어로 동시 발간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발간을 전후한 오는 9월에 '근대성과 충격들' 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한국어 판의 출간은 문화과학사가 맡는다.

이 학술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서구에 의해 규정된 사고, 즉 서구 중심의 근대적 지식체계 비판을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

아시아 뿐 아니라 서구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 세계 지식 생산의 불균형 현상과 그 극복방안 마련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6개 국어로 펴내는 이유도 이런 의식을 바탕을 깔고 있다. 하나의 중심 언어로 학술지를 내고 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6개 언어로 논문을 동시 작성해 이를 상호 번역하는 것이다.

강내희 교수는 " '흔적들' 에는 지배적인 언어가 없습니다. 하나의 언어에서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6개 언어의 상호작용으로 번역되는 것이죠. 이는 서구위주의 지식 보급을 극복하려는 실험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학술지에 참여하는 서구 지식인을 보면 문화연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스튜어트 홀, 해체주의 철학을 정립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호주 문화연구를 이끌고 있는 메이건 모리스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동아시아 출신으로서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나오키 사카이,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최정무 교수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사카이 교수와 최정무 교수는 서양학계에서 동아시아의 탈(脫)식민지 연구를 꾸준히 강조해 1990년대에 동아시아란 주제를 세계 지성계의 주요 관심분야로 끌어올렸다.

이들을 중심으로 미국.일본 등 각 국에 '흔적들' 국제편집위원단이 구성돼 있다.

국내 편집위원단에는 강내희.김은실 교수를 비롯,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이론).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최정운(서울대 국제정치학)교수와 이진경(성공회대 강사)씨 등이 참여하고 있고 조혜정(연세대 사회학)교수가 자문위원을 맡았다.

이들은 국내의 대표적인 문화 연구자들로 문학.인류학.영상학.정치학 등 전공분야가 다양하다. 서구 중심의 근대적 지식체계 비판은 물론 학문간의 영역 파괴, 문화가 가진 상호 권력 작용 탐구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광현 교수는 "동아시아는 근대사에서 제국주의적 침략, 식민지배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주의적 저항이 응집돼 있는 곳으로 앞으로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곳이지만 역사의 변방으로 취급되고 있다" 며 " '흔적들' 은 이런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흔적들' 은 탈식민지 논의에 관심을 가진 6개국 지식인들이 주요 주창자인 나오키 사카이 교수를 중심으로 모여서 닻을 올리게 됐다. 국내학자들은 97년 광주비엔날레 국제심포지엄에서 의견을 함께 하게 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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