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무얼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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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여소야대(與小野大)양당체제' 에서 동반자관계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야대 양당체제는 정치권이 헌정사(憲政史)에서 처음으로 겪는 경험이다. 자칫 정부와 국회가 가파르게 대치해 서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불안한 구도다.

4.13총선 이후 金대통령은 이런 상황의 타개책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왔다. 일단 金대통령과 李총재가 대화와 협력의 정치에 합의함으로써 "가닥이 잡혔다" 고 청와대 관계자는 평가했다.

"집권 초반 자민련과의 협조(DJP공조)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 한나라당과의 협조관계가 더 중요한 흐름이 됐다" 는 것이다. 이런 협력관계는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집권 초기 DJP공조로 개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해 "이회창 총재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라고 이 관계자는 인정했다.

야대 구도에서 협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 '국린?정치의 중심' (발표문 5항)이라는 대목이다. 정치는 국회가 하고,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하는 구도다.

"역사에서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고싶다" 는 게 金대통령의 목표다. 남북 정상회담 등 金대통령이 필생의 과제로 추진해온 일들이 가시화하고 있다. 따라서 일단 정치를 떠나 국정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李총재도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확고히 함으로써 차기 대권 행보를 빨리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수시로 대통령을 만나 국정을 함께 논의함으로써 '책임지는 야당 총재' 의 이미지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국회 미래전략위원회.정책협의회 등 구체적인 장치들도 만들었다.

金대통령이 관리할 선거는 다음 2002년 대선뿐이다. 여기에 후보로 나서려는 李총재로서도 "金대통령과의 협력관계가 나쁠 게 없다" 고 한나라당 당직자는 말했다.

그러나 이 협조체제를 '불안정하다' 고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李총재의 최대 지지층이 '반(反)DJ정서' 를 갖고 있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고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의심했다. 차기 대권을 위해서라도 지지층의 정서를 외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에도 金대통령이 '상생(相生)의 정치' 를 내세운 것이 정계개편을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야 협조관계가 헝클어질 경우 다른 시나리오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음달 국회 원(院.지도부)구성을 둘러싼 의견차이가 해소되지 않고 있고, 선거부정.병역비리에 대한 수사도 정치권이 연루돼 있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들도 여야 대결을 촉발시킬 수 있는 변수들이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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