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닷컴경제 잔치는 끝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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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식투자를 케인스는 일찍이 미인 뽑는 일에 비유했다. 제눈에 예뻐보이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예쁘다고 보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따라서 남들이 살 때 주식을 사고, 팔 때 따라서 팔게 마련이다. 주가가 계속 치솟을 때는 '모멘텀 투자' , 무너질 때는 '패닉' 으로 부른다.

근 5개월째 수직 상승해오던 미국 나스닥시장이 '검은 금요일' 의 대폭락으로 휘청거리면서 '파티는 끝났다' 는 경보가 도처에서 울려댄다. 코딱지만 하던 우리의 코스닥시장도 금세 코끼리로 변하더니 동반폭락과 함께 투자자들이 큰 코 다치고 코피를 쏟는 처지가 됐다.

과다평가의 거품이 터지면서 주가전망은 그야말로 시계제로다. 이런 때일수록 불길한 예언가들이 뜨게 마련이다.

오늘의 카산드라는 금융행태학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예일대학의 로버트 실러(53)교수다. 그는 지난 96년 시장의 불안정성에 관한 연구로 금융부문 '새뮤얼슨 상' 을 받았고, 저서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들뜸' (irrational exuberance)은 어느새 '오늘의 용어' 로 자리잡았다.

기술변화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끊임없이 자기실현적 상승장세를 몰아온 결과가 바로 오늘의

주가거품이라며 "올라올 데까지 다 올라왔다.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고 그는 단언했다.

물론 그의 진단을 믿지 않는 이도 많다. 1929년 대공황 때 예일대의 어빙 피셔는 그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그는 공황이 절대 안온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많은 주식투자를 하다 재산과 학자적 명성을 함께 날렸었다. 나스닥 대폭락을 보면서 왕년의 대공황을 떠올리는 이도 적지는 않다. 투자심리적 측면에서 사실 걱정도 된다.

그러나 오늘의 닷컴경제는 정보기술(IT)혁명과 벤처붐의 쌍끌이체제다. 증시가 아무리 폭풍우를 몰고 와도 기술변화의 '도도한 흐름' 은 어찌 할 수가 없다. 과거 라디오와 철도의 등장은 산업의 모습부터 바꿔 놓았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혁명이 몰고오는 변화는 그에 비길 바가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와 함께 청바지 붐이 일었듯이 인터넷에 모든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 네트워크장비와 관련산업이 뜨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분야에 따라 당장 돈이 되지 않고, 돈이 된다 해도 좀처럼 이익이 안나고, 미래가치 또한 허황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인터넷혁명은 오케이, 그 기업들은 노' 라고 돌아선다면 우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가능성의 현실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닷컴 주식들의 폭락장세를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으로 즐기려는 축도 있다. 왕따취급을 받아온 굴뚝주들의 맺힌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그야말로 단견이다. '검은 금요일' 대폭락 때 다우주가의 동반폭락을 보지 않았는가. 보석상 티파니주식마저 보석 수요급락을 우려해 대폭락했었다.신경제와 옛경제는 이미 하나로 엮어지고 있다. 신.구경제를 막론하고 기업의 시장가치를 최대한 높이려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IT화에 성공하는 길밖에 없다.

이번 나스닥 대폭락이 미국경제와 세계경제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과열을 식히는 폭풍우에 해당하고, 거품붕괴 과정에서 기술력과 실적위주로 선별해 시장에서 절로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된다는 얘기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는 이치다.

상장이나 등록을 앞둔 인터넷 벤처들은 시련이 크겠지만 이를 딛고 일어서야 참된 승자가 된다.

벤처는 전체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변화의 매개체다.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부단한 조정을 거치면서 견실한 중견기업이 되거나 산화(散華) 또는 도태된다. 성공하면 비싼 값에 팔고 다시 새 분야로 나서기도 한다.

한 때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뉴프런티어를 부단히 추구해가는 벤처정신이 살아 있는 한 닷컴경제는 영원하다.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그룹을 지향하거나 대기업그룹의 손바닥에서 노는 탈선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산업은 '아시아의 숨겨진 보배' 라고 하지 않는가.

숨겨진 진주가 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변상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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