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새 돈 ‘2002·2008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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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30일 옛날 돈과 새 돈을 100대1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이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보도로 확인됐다. 이 신문 인터넷판은 4일 조선중앙은행 책임부원의 말을 인용해 이런 내용의 화폐개혁을 전하면서 새 화폐를 공개했다. 새 지폐는 5000원, 2000원, 1000원, 500원, 200원, 100원, 50원, 10원, 5원 등 9종이다.

신문은 “(북한에서) 통화가 팽창되고 인민경제발전에서 불균형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났다”며 “이번 조치로 국가의 경제능력이 강화됨에 따라 시장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약화될 것”이라고 밝혀 화폐 개혁이 인플레이션을 잡고 자본주의적 요소를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번 화폐 개혁은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공개된 새 화폐의 발행연도 때문이다. 지폐 9종 가운데 5000~100원권은 2008년으로, 50~5원의 소액권 지폐는 2002년으로 찍혀 있다. 그래서 북한이 2002년이나 2008년 화폐 교환이나 개혁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양에서 중국 단둥으로 3일 나왔다는 북한 무역일꾼 김광철(가명)씨는 "2002년 여름 화폐개혁을 위해 신권을 인쇄했으나 사전에 소문이 퍼져 취소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2002년은 북한 경제에서 분수령이었다.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임금과 생필품 가격을 30배 이상 올렸다. 북한은 이에 맞춰 5000원, 1000원권을 새로 발행했다. 물가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북한은 당시 모든 화폐를 바꾸는 차원에서 소액권까지 인쇄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북한정치)는 “7·1 조치는 북한 경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며 “그 당시 모든 돈을 교환해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으나 소액권 교환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 찍은 돈을 유통시키지 않고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5000~100원의 고액권 발행연도(2008년)는 북한이 지난해 화폐개혁을 실시하려 했던 점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중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뇌졸중 증세로 기능 부전 상태였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이 지난해 화폐개혁을 목표로 돈을 찍어놓았지만 김 위원장 건강 문제로 일정을 연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정용수 기자, 단둥=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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