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반나절 행복]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 & 갤러리카페 '식물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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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는 지금 축제 중이다. 다음 주말까지 눈.코.입.귀가 즐거울 일이 수두룩하다. 가는 길의 햇볕.바람.하늘 다 눈부시고 특히 자유로 중앙분리대 안에 밭을 이룬 코스모스는 이 계절의 압권이다. 사람 허리를 넘는 그 옛날의 키 큰 코스모스! 그게 무진장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자유로를 따라가다 왼쪽에 보이는 통일전망대를 지나 성동 인터체인지에서 길을 내려라.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조형이 독특한 집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거기가 바로 헤이리다.

헤이리는 알다시피 실험 중인 동네다. 우리 머릿 속의 꿈을 눈앞에 구체화해 놓은 미학도시다. 문인. 화가.영화인.건축가.음악가 370여명이 이 동네의 미래 주민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며 느리게!'가 그들이 공동서명한 이 동네의 이상이다. 그들이 헤이리에 지금 집과 작업실.미술관.박물관을 짓고 있다. 헤이리 15만평은 고맙게도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렸다. 마을구경은 차를 타기보다 천천히 걷는 편이 좋다.

아름다운 거리에서 들어가 앉아 차 한잔 마실 곳을 고른다면 나는 갤러리가 함께 있는 '식물감각'을 권하겠다. 더 감각적으로 '꽃을 먹는 집'이란 부제도 붙여뒀다. 우리 꽃에 반해 강남의 잘나가는 국어선생 노릇을 집어치우고 꽃사랑에 몰두해온 우리꽃연구가 마숙현씨가 이 집 주인이다. 1층 갤러리에서는 지금 김일화의 '꽃은 꽃이다'전이 열리고 있다. 비의를 품은 듯한, 크고 강렬한 꽃들이 흰 벽면 위에 찬란하게 떠 있다.

한 층을 올라가면 사방이 유리로 열린 카페다. 앞은 헤이리의 전체 경관, 뒤는 참나무와 밤나무가 무성한 뒷동산이 환하게 내다보인다. 그리고 맨 위의 나무 데크, 거기 바람을 맞으며 앉아보라. 세련된 소박함을 지향하는 건축가 김종규가 지은 이 집 건축물 자체도 눈 둘 곳 투성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한데 들여다보면 공간과 시점이 변화무쌍한 집이다. 데크 한쪽 벽면엔 보라와 녹색 꽃잎을 모티브로 한 김일화의 대형 그림이 걸렸고 눈 두는 곳마다 실제 보랏빛 야생화들이 애잔하게 피었다.

'식물감각'둘레엔 마숙현씨가 심어놓은 우리 꽃이 150종쯤 자란다. 9월에 피는 꽃빛깔은 주로 보라색이다. 안주인 장현숙씨는 "저 꽃 이름은?" 하고 물을 때마다 "저건 두메부추, 저건 용담, 저건 구름체꽃, 저건 세서나물." 이름만으로도 마음 향긋해지는 꽃이름을 연방 일러준다. 과연 절로 "꽃에 관한 담론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테이블 유리화병엔 층꽃나무 보라꽃이 꽂혔고 차를 주문하면 시금치 물들인 초록 전에 야생화 두어 송이를 얹은, 차마 먹기 아까운 화전 한 접시가 따라나온다. 공들여 뽑는 커피 6000원. 부지춘.대홍포 같은 중국차는 8000원. 이 무렵엔 뒷산에 올라 알밤.도토리를 주울 수도 있겠고 음악없이 비워둔 공간엔 까치소리.바람소리가 가득 찼다. 식물감각에 가거든 당신도 주변의 먹는 풀과 꽃들을 입에 넣고 적극적으로 씹어보라. 자연과 인간, 미각과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고 역동하는 반나절 행복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전화 031-957-3123.

생활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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