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코너몰린 보수파 반격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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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란은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정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이란에서 최근 젊은 가정주부들의 가출이 급증하고 있다.

가정불화가 주된 이유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2~3년 전부터 급격하게 늘고 있다. 대부분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결혼한 10대 여성들이다. 테헤란시는 이들을 위해 안식의 집까지 마련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란의 젊은이들은 서구 문명에 목말라하며 인터넷과 위성 TV에 매달리고 있다. 당국은 마지못해 1993년부터 젊은이들의 그런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자유지대를 설정해주고 있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이란의 개혁파가 전체의석의 82%를 휩쓴 것은 이슬람 율법을 벗어던지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욕구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성직자 중심의 보수파는 다음달로 예정된 새 국회의 개원을 앞두고 개혁 저지를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언론통제 강화 법안을 제정하고 개혁 반대 관제데모를 주도하고 있으며 쿠데타 위협까지 흘리고 있다. 20년 동안 유지해 온 권력을 개혁파에 순순히 넘겨줄 수 없다는 마지막 저항인 셈이다.

민병대 소속 1천5백여명은 19일 테헤란대에서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미국식 개혁 옹호자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보수파 의회는 18일 임기 종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친개혁 성향의 신문과 언론인들에 대한 통제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신문 발행의 허가권을 하타미 대통령 휘하의 문화부에서 성직자가 관할하는 정보부와 법원.경찰로 옮겼다.

또 언론은 이슬람 혁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언론인의 과실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이란 언론이 지난 2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거센 변화요구를 여과없이 전달한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보수파는 97년 대선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모두 패배했다. TV와 라디오는 이미 보수파인 이슬람 최고 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지도자 모하마드 하자지는 이란 관영 통신 IRAN과의 인터뷰에서 개혁파와 언론 등이 이슬람 이념에 위반되는 행동을 할 경우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하메네이도 지난 14일 이슬람혁명의 정신에 거역하는 세력에 대한 폭력 사용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파가 이처럼 거칠게 나오고 있지만 개혁파는 잠잠하다. 섣부른 대응은 반격의 빌미를 줄 뿐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신정일치의 형식을 유지하되 내용적으로만 개혁할 수 있다면 그뿐 아니냐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법부와 군부,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파가 하타미 대통령에 대한 테러 혹은 물리적 저항을 조직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없지 않다. 또 지난 2월 총선 결과에 최종 승인권을 갖는 혁명수호위원회가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것도 주목거리다.

장정훈 기자

◇ 도움말 주신 분〓장병옥 외국어대 교수(이란어).김중관 명지대 교수(아랍경제).이종택 명지대 교수(아랍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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