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할머니들 55년만에 무학여고서 졸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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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학교 주위는 허허벌판이었죠. 집(서울 후암동)에서 전철타고 왕십리에 내려서 걸어다녔는데, 8.15 해방으로 갑자기 떠나게 돼 마음 한 구석에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1945년 당시 무학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이쯔하라 요오코(市原陽子.70)씨는 이날 55년만에 졸업장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20일 서울 행당동 무학여고 운동장에선 태평양전쟁 패망으로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귀국했던 일본인 학생 93명에 대한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 열렸다.

개교 60돌 기념 행사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93명 중 머리가 하얗게 센 16명의 할머니들이 현해탄을 건너와 직접 졸업장을 받아들고 감격에 젖었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오이 미치코(直井美智子.68)씨는 "수력발전회사에 다니던 부친 때문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친한 친구들과 아쉽게 헤어졌던 생각이 난다" 고 회상했다.

그녀는 "히로시마에 돌아가 대학까지 졸업해 교사가 됐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을 항상 그리워했다" 며 "아들(35)도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보냈었다" 고 말했다.

이들 할머니들은 70년대부터 일본에서 무학여고 동창회를 만들어 1년에 1~2차례씩 모이며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 행사는 이들이 일본에서 '무학학교' 이름만 들어도 눈물을 글썽인다는 소식을 들은 무학여고(교장 유영분)측이 개교 60주년에 맞춰 초청행사를 벌이기로 해 이루어졌다.

행사에는 일본인 졸업생 22명도 동반 참석했다. 이들 중 학창 시절 배구부에서 센터와 라이트로 활동했다는 다나까 미치코(田中美智子.71)씨와 김순진(金淳珍.71)씨는 1945년 2월 졸업이후 55년 2개월만에 상봉,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글〓윤창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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