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의원연맹 대폭 물갈이 예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정계의 '킹메이커' 로 불린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총리는 한국 정계와의 대표적인 막후 파이프다. 1990년 4월 이래 일.한 의원연맹 회장도 맡고 있다. 98년 한.일 어업협상 타결에도 그의 조정력이 한몫한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그의 정계 은퇴가 기정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이래 변형성 척주증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데다 애제자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총리의 뇌경색 입원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총선은 6월이 유력시되는 만큼 그가 일.한 의원연맹 회장직을 맡을 날도 얼마 남지않은 것 같다.

오부치 전 총리의 입원은 한국 외교에도 '쇼크' 였다. 총리 때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일궈냈고 적극적으로 한국 인맥을 구축했다.

최상룡(崔相龍)주일(駐日)대사가 발령났을 때는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일.한 의원연맹 부회장인 그는 한국 의원들과의 유대에도 팔을 걷어부쳤었다.

지난해 11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제 26차 한.일, 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 당시에는 총회를 비롯해 세차례에 걸쳐 모습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자민당 최대 파벌 영수출신에다 정치 스승.제자인 다케시타.오부치의 동시 퇴장으로 일.한 의원연맹 수뇌부는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두사람의 구멍을 메울 거물급 지한파(知韓派)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일.한 의원연맹 부회장을 오래 맡아왔지만 두사람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다. 자민당 실력자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은 북한과의 교분이 두텁다.

한국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총선에 따라 한.일 의원연맹의 수뇌부가 모두 바뀌게 됐다.

박태준(朴泰俊)총리는 취임과 동시에 회장직 사표를 낸 데다 의원이 아닌 만큼 복귀가 불가능하다. 김봉호(金琫鎬)회장대행과 손세일(孫世一)부회장, 양정규(梁正圭)간사장, 김윤환(金潤煥)전 회장은 낙선했다.

지일파의 무더기 낙선에 대한 일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일간 새 의원 파이프 구축은 양국 모두에 발등에 불이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