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주가폭락에 개미군단 한숨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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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상 최악의 주가폭락 사태가 벌어진 17일 개인투자자와 벤처업계 종사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명동.여의도와 강남 일대의 증권사 객장에 나온 개인투자자들은 개장과 동시에 시세판이 순식간에 파랗게 물들자 할 말을 잊어버렸다.

"무섭다, 무서워" "이제 완전히 망했군" 등 넋두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 미동조차 하지 않고 모두 시세판만 응시했다.

주부 金모(45.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집에서 뉴스를 보다 하도 답답해서 나왔다" 며 "33만원에 산 주식이 18만원으로 떨어졌다. 앞으론 절대 주식 투자는 않겠다" 고 허탈해 했다.

퇴직금을 떼어 내 나름대로 치밀한 분석을 하며 투자를 해왔다는 尹모(64.서울 강남구 역삼동)씨는 "국내 기업정보를 꼼꼼히 챙겨가며 투자하면 뭐 합니까. 주가는 미국 상황에 따라 춤추는데…" 라며 증시의 취약성을 한탄했다.

오전 11시40분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담화에서 '주가 안정' 이란 단어가 흘러나오자 객장의 모든 시선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TV로 집중됐다. 점심시간엔 직장인들이 객장으로 몰렸지만 대다수가 어깨를 떨구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업체 H사 申모(29)대리는 "직원들 대부분이 오전 내내 증권정보사이트에 접속해 시세를 체크하는 통에 업무가 완전 마비됐다" 며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모든 희망을 주식투자에 걸었는데 '반의 반토막' 이 나버리니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고 담배만 피워댔다.

증권정보사이트 게시판도 개미군단의 울분에 찬 글로 가득 찼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의 영향을 이 정도로 받진 않았다" "총선 후 코스닥 대붕괴 루머가 사실로 확인됐다" 는 등의 글이 1분에 한 건꼴로 올랐다.

서울 강남구 벤처밸리에 몰려있는 벤처기업들도 비록 외부시선을 의식해 대부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회사가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원들 모두 좌불안석이었다.

A사의 경우 "우리 주식은 안전한가" 를 묻는 투자자들의 문의전화로 업무가 완전 마비될 정도였다. 연초 6만원을 호가하던 주가가 최근 하락하기 시작, 이날 하한가를 치면서 1만원대로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2주 전 스톡옵션 1천주를 받고 벤처기업 D사로 옮겨 간 金모(33)씨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고 이직했지만 지금은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앞선다" 며 초조해 했다.

삼성증권 명동지점 홍준의(洪俊義.38)과장은 "이런 장세는 전문가 예측이 불가능하며 비록 정부가 특단의 조치로 하락폭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은 불가피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金貞壹.42)박사는 "주가 폭락이라는 사태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심리적 공황상태로 인한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된다" 며 "책임을 정부나 기관으로 돌리기에 앞서 본인 스스로 투자의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라" 고 주문했다.

우상균.박현선.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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