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회사에도 권력분립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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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민주주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에 마지막 남은 꿈은 ‘경영참여’를 보장받는 것이다. ‘경영참여’라는 고비만 넘으면, 회사 내에서도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기나긴 여정의 종착역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노사협의회도 이런 이상을 반영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제도적 뒷받침을 받아 많이 확산되었고, 대부분의 사업장에 노사협의회가 존재하긴 한다. 노사협의회가 잘 돌아가 성공한 기업 사례도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활성화된 곳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경영진이 민주주의의 확산을 가로막기 때문일까?

물론, 경영진이 비협조적인 경우도 없지 않다. 노사협의회에서는 경영정보도 공유하고 경영권력도 나눠야 하지만, 이것이 불편한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어떨까? 경영참여를 환영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노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경영참여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읽는 것이 뭐람?

가장 먼저 경영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경영참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경영진에게 경영책임을 캐물을 수 있지만, 경영참여를 하는 순간, 이것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너무 경영에 깊숙하게 참여함으로써 노조 내 반대세력으로부터 어용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점도 부담스러울 부분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경우에 경영진이 아닌 노조 측이 노사협의회를 노조활동의 부분 활동으로 유지만 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사협의회 수준을 넘어, 좀 더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 어떨까?

자기 회사 주식 지분을 일정부분 보유하는 우리사주조합 정도가 아니라, 100% 인수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텐데, 그 경우에도 끝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고 한다. 노조 또는 우리사주조합이 경영까지 장악한 경우에는 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이런 경우는 기업 단위에서 사회주의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사회주의 혁명 초기단계에 그러했듯이, 회사를 인수한 초기에는 이 회사가 이제는 내 회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회사를 살리는데 열정을 쏟는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국면을 넘어서고, 초기의 열정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면,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도 생기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회사의 사주로서 주식을 보유한 올드 보이와 새로 입사한 주식을 갖지 못한 종업원으로서 영 보이간의 이해관계 분리현상도 문제라고 한다. 이 두 집단이 가치를 공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영 보이들로서는 올드 보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과거의 영광’이 가슴에 와 닿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회사 내에도 권력분립이 존재하는 상태다. 노조가 국회와 같은 견제와 감시 기능을 담당하고, 경영진이 행정부처럼 집행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그것인데, 노조의 완전한 경영참여보다는 오히려 이것이 더 민주주의의 정신에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소유권 역시 노사 어느 일방이 전유하는 것보다는 공유하는 것이 사내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데에는 유리할 듯하다. 우리사주조합이 적절한 규모가 되어서, 경영정보를 확보하는 등 노조와 경영진 사이에서 적절한 기능을 한다면, 노사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직원들의 애사심 고취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권력 분점 상태에서는 노사협의회도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민 부장은 회사 내의 적절한 권력분립 상태가 어떤 것일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 균형점은 회사마다 또 노사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진화하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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