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자리 걸음…인니 정부 초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히드 정부가 초조하다. 과거 청산.민주주의 확대 등 정치개혁 분야의 뚜렷한 행보와는 달리 경제적 성과는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히드 정부는 정치.경제 개혁의 가속화에서 처방을 찾고 있다.

◇ 지지부진한 경제개혁〓지난달말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3년간에 걸쳐 인도네시아에 제공하기로 한 50억달러의 차관 중 4억달러의 송금을 연기했다. 지난 1월 의향서를 통해 약속한 개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IMF는 당시 차관제공 조건으로 재정지출 감축.금융시스템 개혁.부패 척결 등에 관한 상세한 개혁일정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각 기업들의 채무상환 노력도 별 성과가 없었다.

부실기업을 해외에 매각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금융구조조정기구(IBRA)가 매입한 기업자산 중 절반 정도가 아직 팔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12일 열리는 파리클럽(서방채권국 모임)회의에서 21억달러의 채무에 대해 상환연장을 요청한다는 계획이었지만, IMF의 결정이 이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 더딘 경제회복〓인도네시아 경제는 외형적으론 회복의 길로 접어든 듯하다. 1998년 마이너스 13%, 지난해 0% 정도였던 GDP성장률은 올해 4%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물가상승률도 떨어지고 있으며, 금리도 안정을 찾았다. 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제회복 속도는 한국.태국 등 IMF지원을 받았던 여타 아시아 국가 뿐만 아니라 연평균 6%에 이르렀던 수하르토 시절에 비해서도 더딘 것이다.

최근의 회복세마저 풍작을 이룬 농업부문이 과도하게 반영된 '통계적 속임수' 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경제회복을 위해선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소요.정정불안.부패 등에 따른 투자환경의 불투명성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 처방은 개혁뿐〓와히드 대통령은 IMF에 개혁의 가속화를 약속했다. 특별 국무회의를 소집해 개혁 이행을 독려했으며,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방문길에서는 부패사건에 연루된 3명의 장관을 조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심지어 개혁 지체를 문책하는 의미로 외무장관을 제외한 모든 장관들의 해외여행을 금지하기도 했다. IBRA도 연말까지 12~20개의 기업을 매각해 24억달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의지에 IMF도 "핵심 부문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다" 고 평가했다.

와히드 정부는 무엇보다 '정치는 우등생일지 몰라도 경제엔 무능하다' 는 평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이다. 국민들은 와히드의 정치개혁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경제운영의 난맥상이 계속된다면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부문의 개혁도 계속되고 있다. 수하르토 축재과정에 대한 조사가 진전되고 있으며, 언론.사상.표현의 자유화도 강력 추진되고 있다.

와히드는 심지어 1966년 제정된 공산당 금지법을 폐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과감한 정치개혁을 계속 밀고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계산한 듯하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