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벤처 인재… 대기업이 낚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벤처기업에서 일하던 인력이 대기업을 찾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벤처로 떠났던 인력이 재입사하고, 대학 졸업후 벤처에서만 일하던 20대 후반의 젊은층도 대기업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삼성.LG.SK 4대 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한 수시채용 규모를 늘리거나 인터넷 사업에 적합한 우수인력을 끌어오는 임직원에게 포상키로 하는 등 '벤처 이직 인력' 잡기에 나섰다.

LG 구조조정본부 정상국 상무는 "벤처기업에 우수인력을 빼앗겨온 대기업들이 이제는 자체 인터넷 사업을 위해 유능한 벤처 경험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스스로 떠난 사람은 받지 않는다' 는 오랜 인사관행을 깨면서 벤처로 갔던 인력을 다시 채용하고 있다.

◇ 새로운 인재 풀(pool)로 떠오르는 벤처〓물산.전자 등 삼성그룹의 주요 관계사에 지난해 10월 이후 입사지원서를 낸 경력직 1만5천여명 중 8%인 1천1백50명이 벤처 출신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2백40여명은 채용을 위한 최종면접을 받았으며,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층이다.

올들어 SK㈜는 60명, SK상사는 3백명의 경력직을 채용했는데 중견 소프트웨어업체 출신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현대.LG 등도 최근 수시채용을 늘린 결과 인터넷 기업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다수 지원했다.

현대증권의 경우 지난달 정보통신.인터넷.생명공학 분야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람을 벤처기업 투자를 위한 심사분석 담당으로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우자 벤처 출신들이 적잖게 몰렸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인사팀 관계자는 "인터넷 사업 확대에 필요한 인력을 기왕이면 벤처기업에서 일한 사람들로 충원하는 게 유리하다" 고 설명했다.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데다 경직된 대기업 문화를 바꾸는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

삼성.LG는 사표를 내고 벤처로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받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물산.전자.SDS처럼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신규사업이 활발한 곳은 올들어 퇴직사우 10여명을 재입사시켰다.

지난해 초 삼성SDS를 그만두고 인터넷 업체 두곳을 다닌 A씨(32)는 지난 2월 사내벤처 기획담당으로 다시 특채됐다.

특히 벤처인력이 부족한 전자.정보통신 업체들은 '전 임직원의 헤드헌터화' 를 선언했다.

LG전자는 유능한 벤처기업 인력을 구해온 사람에게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 벤처 인력, 왜 대기업을 찾나〓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불확실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

지난 1월 서울 테헤란로 벤처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다 삼성 관계사 인터넷 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李모(29)씨는 대학 졸업 후 스톡옵션과 자유스런 분위기가 좋아 벤처 관련 기업에서만 일해왔다.

그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팀워크를 이루고 업무 인프라가 잘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삼성이 벤처기업 경력자의 채용면접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성패가 불확실한 스톡옵션에 비해 당장 월급이 적다▶격무와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힘들다▶마케팅 능력과 경영정보를 축적.공유하는 업무 인프라가 미흡해 일하기가 불편하다는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민병관.홍승일.이석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