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보다 고운 ‘특급 쌀가루’ 비결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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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니가타 제분공장에서 직원이 쌀가루 포대를 지게차로 옮기고 있다. 왼쪽은 쌀 가공품. 쌀과자와 쌀가루는 물론 쓰레기봉투와 그릇까지 쌀의 변신이 화려하다.

지난달 27일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 제분공장. 높이 2m 정도의 사일로 3개에 담긴 쌀이 파이프 라인을 타고 공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건물 다른 쪽 끝에서는 하얀 쌀가루 분말이 쏟아져 나왔다. 밀가루만큼이나 입자가 고운 분말은 포대에 담긴 뒤 지게차에 의해 창고로 옮겨졌다. 방문객들은 전자동으로 돌아가는 내부 모습을 창문 밖에서만 엿볼 수 있다. 반도체 공장 견학을 연상시킬 정도다. 일본이 한 해 수입하는 밀가루 500만t의 10%를 쌀가루로 대체하자는 R10(Rice Flour 10) 프로젝트의 심장부인 니가타 제분공장은 이렇게 첨단시설을 완비하고 있었다.

밀가루 수입량 10% 대체 ‘R10 프로젝트’ 본거지
‘효소 처리 → 압축공기 분쇄’ 특허기술로 만들어
올 3500t 생산, 작년 11배 … 생산비 절감이 숙제

국내에서도 연이은 대풍으로 남는 쌀 처리가 현안이 된 가운데 쌀가공산업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일본을 찾았다. 한국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 역시 남아도는 쌀 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국민이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 118㎏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59㎏까지 떨어졌다. 식량 자급률이 41%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경작지를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전체 논의 40%에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농림수산성 한 해 예산의 20%(5600억 엔)가 투입된다. 하지만 생산 통제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침밥 먹기 운동인 ‘메자마시 고항(아침잠을 깨우는 밥)’ 캠페인 같은 소비 촉진책도 병행한다. 학교에선 급식으로 주 4회 이상 밥을 제공하자는 운동도 활발하다.

2년 전에 시작된 R10 프로젝트도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보조금까지 줘서 휴경을 시키느니 그 돈으로 가루용으로 적합한 쌀을 심게 하자는 것이다. 대신 밀 수입이 줄게 되고 밀 운송에 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본 쌀 농업의 본산인 니가타현 호시 다카시 식품유통과장은 “경작지 보존을 위해서도 가공용 쌀 재배가 절실하다”고 소개했다.

쌀가루를 활용하려면 두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우선 쌀은 밀보다 딱딱해 잘 부숴지지 않는다. 맛이 거칠고 가공도 어려운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니가타현이 직접 개발한 특허기술이다. 핵심은 쌀을 효소에 담가 조직을 헐겁게 한 뒤 압축공기로 분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밀가루보다 입자가 더 고운 쌀가루 생산이 가능해졌다. 니가타 제분은 이 기술을 적용한 최대 규모의 공장이다. 지난해 4500t의 고품질 쌀가루를 만들어 4억5000만 엔의 매출을 올렸다. 후지 효시후미 공장장은 “특성이 밀가루와 똑같아 제빵회사 등에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 덕분에 니가타현의 쌀가루 생산량은 지난해 300t에서 올해 3500t으로 늘었다.

생산비 차이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현재 가루용 쌀의 시세는 ㎏당 80엔으로 주식용 쌀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10a당 8만 엔의 보조금을 주며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또 쌀가루 제분공장을 만들 때 시설비의 50%를 무상 지원해 준다. 한국 농림수산식품부 식량정책과 윤재돈 주무관은 “쌀가루 생산의 초기 단계인 한국도 일본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니가타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니가타=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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