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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순방서 얻어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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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일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방문한다. 이번 순방은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정상외교가 재개된다는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그 첫 출발이 지금껏 우리의 관심분야에서 조금 밀려나 있는 듯하던 유라시아의 대표적 국가들과의 관계강화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문하는 카자흐스탄엔 우리 동포 1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 카스피해의 자원 개발로 유라시아의 핵심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또한 향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되면, 중국을 지나 유럽으로 연결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중국.독일 등 각국 지도자는 물론이고 다국적 기업의 총수들이 이 나라를 뻔질나게 방문하고 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이번에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뒤 러시아를 잇따라 방문한다는 점은 정치.경제 양 측면을 고려한 적절한 루트이자 대단히 시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경제의 3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아시아.미주 대륙들을 중심으로 발전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동북아를 포함한 유라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와 발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유라시아 발전의 핵심적 국가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후 안정적인 정치구조 아래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러시아는 최근 한반도에 연접한 동시베리아 및 러시아 극동지역의 개발과 관련해 몇 가지 거대(메가)프로젝트들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남북 종단철도의 연결이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우리의 광양과 부산의 항만으로 집중되는 컨테이너를 유럽으로 운송하려 계획하고 있다. 또한 동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의 에너지 개발에 필수적 요인인 운송망을 구축하는 데 있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운송과 에너지 개발을 포괄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또 이 지역에서 개발된 에너지원의 운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계획도 추진 중이다. 동시베리아의 타이셰트에서 나홋카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및 가스배관망과 이미 215km의 진척을 보이고 있는 사할린과 하바로프스크를 연결하는 가스 파이프 라인망 등 두 개의 간선 에너지망의 건설이다.

이외에도 핀란드와 중국에 전력을 송출하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12년 전부터 추진해온 북한을 통과해 한국에 전력을 수출하려는 계획과 함께 사할린에 발전소를 건설해 일본의 전력계통과 연결하는 계획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그 파급효과가 러시아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동북아 단일 통합 에너지시장'은 역외에서 주 에너지를 수입해오던 동북아의 한국.중국.일본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자국의 미래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노 대통령이 유라시아를 순방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의 정쟁도 중요하지만 국외의 움직임이 때로는 우리의 명운과 향후 우리 경제의 성패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노 대통령은 반드시 이번 순방을 통해 한국과 이 지역 국가들 간의 호혜평등의 협력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러 양자관계에만 매달려 에너지 문제를 비롯해 거대한 프로젝트의 흐름을 자칫 양국의 경제협력 차원에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전개될 동북아 공동의 에너지협력체 구성 및 에너지단일통합시장 논의 구조 속에서 양국의 협력가능성을 한국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 동북아지역 협력의 큰 틀이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원순 한국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