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NASA가 보낸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1961년 4월 12일 미국은 경악했다. 소련 우주선 보스토크 1호에 탄 유리 가가린 소령이 인간으로선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보며 감탄사를 날리는 장면을 지구에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57년에도 소련 스푸트니크 1호가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모습을 역시 TV 중계로 봤던 터였다.

당시 미국의 우주계획은 육·해·공군이 제각기 중구난방으로 추진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58년 미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해 모든 우주계획 창구를 단일화했다. 61년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미·소 냉전의 무대가 우주로 옮겨간 것이다.

신생 NASA로선 벅찬 임무였지만 역으로 보면 이때가 황금기였다. 예산·인력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본주의 미국은 공산주의 소련에 무조건 이겨야 했다. 아폴로 7~17호를 연달아 쏘아 올렸다. 무식하니 용감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자살 행위에 가까웠던 인간의 달 착륙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69년 7월 21일 마침내 세 명의 우주인이 달에 인간의 족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지난 15일 미 국무부 초청으로 NASA의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를 방문했다. 16일엔 129번째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를 쏘아 올리는 광경도 지켜봤다. 69년 이후 미국은 우주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80년대 우주정거장을 놓고 소련(러시아)과 다시 겨뤘지만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소련 붕괴 이후 밑천이 드러난 러시아는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중국·인도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미국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한데 정작 우주를 제패하고 나자 NASA엔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불거진 금융위기 때문만이 아니다. 소련이란 맞수가 사라진 거다. 60년대 NASA가 달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땐 ‘왜?’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서두르지 않으면 소련이 선수 칠까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딴판이다. NASA가 우주왕복선을 퇴역시키고 다시 달에 인간을 보내려는 ‘컨스털레이션(constellation)’ 프로젝트를 들고나오자 사방에서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달에 우주기지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인간을 화성에 보내자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야 한다. 당장 내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직장에서 쫓겨나게 생긴 서민으로선 당연한 의문이다. 화성에 ‘ET’가 살든 말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냔 거다.

그래서였을까. 케네디 우주센터 방문 중 NASA 안내원은 세계 각국의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이젠 미국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세계 각국이 우주개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금단(禁斷)의 영역이었던 NASA의 핵심시설을 세계 각국 취재진에 선뜻 공개한 것도 이런 메시지를 전해 달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우주계획에 뛰어든 한국으로선 지금이 천우신조의 기회가 아닐까.

정경민 뉴욕 특파원 케네디 우주센터에서